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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고를 듣고 주야로 통곡하고 물과 음식을 먹지 않고 적진을 뚫고 가서 구하고저 하나
원근에서 종당엔 유체(遺體 이정공이 나라가 기운 것을 알고 화약에 불을 부치고 분신 자결하여 그 유체나 찾을려고
하나 찾지를못했다는말)
며칠을 보내다가 다만 유물인의 관을 받들어 양주동명 선영내 손향(巽方 : 손방향)으로 빈 옷
만을묻었다.
정경부인은안동권씨를합장했다.옛일이라예관을청하여치제(제사)하니왕이떠도는말
에 의심을 가져, 불분명한 백침(의관만 묻었는 허장을 말함) 근신(近臣) 및 대간의 아뢴 것이 들어가
니 그 실질적 사적을 진술하여 갖추라 하였다. 공의 형제가 또 상소하여 원통하게 죽음을
송주(訟奏)하여 드디어 궤연( 筵 신주를 모신 궤 혼백을 모신 궤 영연) 받들고 수원으로 내려가(流落水源 :
선조가 묻혀있는 고향 태어나고 자란 고향) 서호(西湖 : 충청 우도 서해 안에 위치한 지역)로 옮겨들어가 벼슬로서
서울에돌아가지아니했다.홍주(洪州)(鰲頭村:지금홍성군갈산면오두리)에우거(寓居)하였다.
언덕에 올라가 고국의 서울쪽 하늘을 바라보며 비애로운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홀로 눈
물을흘리었다.
조정에서 공을 공신록에 추가하여 기록하고 호종공신(扈從功 : 왕을 호위하 모신 신하)가선대부
를 더하여 또 대사간에 제수하니 병으로 사망하고 나아가지 않았다. 장자가 어사구체(御史
構逮 : 임금의 명오 지방을 순시하는 기구)가 되어 부득이 서울에 들어가 사은하고(謝恩) 부자가 상봉
할 때(이것은 생부인 김상헌을 상봉할 일인함 김광현을 김상헌의 형인 김상용의 아들로 김상헌에게 양자로 감) 청나라
사신이 장차 이르니 공이 상소하여 말하길 신의 아버지 죽음은 청나라 오랑캐로 말미암으
니 같이 하늘을 이고 서있을 수 없다하여 신(臣)은 만약에 조정에 벼슬할 때 반드시 서로 상
접(相接 : 청나라 사신과 서로 접촉하는 일) 하는 일이 있으면 직책(벼슬)을 내놓기로 청합니다 하니 왕
이 불허하며 재차 상소하여 허락하고 조정에서 그 뜻을 알고 외직으로 청주목사를 제수하
니 무릇 문서에 청나라 연호를 사용하는 것은 서명을 하지 않고 조정에 첨예한 뜻을 들어
일체삼척(三尺) 호강(豪强)을 많이 쓰나 기뻐하지 않고 비방한 말이 일어나면 무기로 제압하
듯하며 군무(軍務)를 정비할 때 조금도 나태함이 없게 하며 창을 베고 자며 조정에 뜻을 기
다리며 들으니 내가 북으로 관할을 넘어 파주에 이르러 관찰사를 만나 직책을 버리고 독
단으로 했다하여 아뢰니 이를 파했다. 신사년(1641) 대사간에 제수 또 부제학에 제수하고 다
홍성의금석문_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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