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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시수리시설로수몰된마을이야기
아버지 바위, 이렇게 붙어 있던 이름도 그리고 그 바위의 흔적도 이젠 찾기 어렵다. 이성구
이장님도말씀하신다.그바위들이지금남아있었다면나름의문화유적이되었을거라고.
성암리에는미륵댕이라고불리는유적이있다.미륵댕이는이정표기능을하고있었다한
다. 옛 문헌의 기록에도 남아있다 하는데 정확하진 않다. 하지만 미륵댕이가 단순히 이정표
의 역할만 한 것은 아니다. 민속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미륵댕이에게 기자치성을 들여
아들 낳은 분이 아직 생존해 계시다고 하고, 예전 무당들은 미륵댕이 앞에서 굿을 하기도
했다한다.홍수나가뭄이들면미륵댕이가기원의대상이되기도했다.
하지만지금의미륵댕이는마을에서사라졌다.1986년경지정리이후,다랑이논덕에사
람들이나 차량의 접근이 쉽지 않았을 때는 문제가 안 되었다. 경지정리 이후 미륵댕이 앞까
지다니기가쉬워진뒤,1988년에도난당했다.
마을 사람들은 도난당한 미륵댕이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게
미륵댕이없이지내다가,2001년이성구이장님이이장연임하던시기에최충열음암면장님
과 논의가 되어 미륵을 복원하기로 했다. 사람들의 기억을 모으고 남은 사진을 뒤져 최대한
비슷한모양으로미륵을다시세웠다.2001년12월14일이다.
이후 성암리는 서산시의 보조를 받아 매년 정월대보름에 미륵제를 지낸다. 서산시에서
미륵제에 보조를 하기 시작한 건 조규선 시장 때부터다. 시의 보조를 받은 이후부터 미륵제
에횟수를더하기시작했고,2021년기준성암리미륵제는16회째이어져오고있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성암저수지는 붕어낚시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역시 마을 사람들에
게 큰 도움은 못된다. 2006년까지 상수원 보호구역일 때는 낚시가 아예 금지되었던 데다
가, 어업 허가도 극히 몇 명에게만 지급되는 것이라, 저수지는 말 그대로 좋은 경관을 주는
존재, 농사에 필요한 존재였을 뿐이다. 2006년 상수원 보호구역 해제 이후 마을에서는 낚
시할 공간을 설치하고자 했으나, 서산시는 관리문제로 허가해주지 않았다. 그 덕에 몰려오
는낚시꾼과마을주민들이교통이나쓰레기로갈등을빚기도했던것이사실이다.
성암저수지는 해미면까지 물이 흐른다. 부장3리나 그 위쪽 탑곡리 주민들이 저수지에 대
해 별 감흥이 없는 것과 달리, 성암리나 그 아래 마을의 논농사에는 젖줄과 같은 존재임이
분명하다. 똑같은 저수지를 바라보는 인근 마을 사람들의 생각은 이렇게 다르다. 55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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