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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김두환(金斗煥)(1913∼1994)
기교보다는 개성과 독창
성을 중요시 여겼던 서양
화가 김두환 화백은 예산
읍 예산리 505-3번지에
서태어났다.호는설봉(雪
峰), 향천(香泉), 강남, 청
계(淸溪), 월성(月城), 금
오산인(金烏山人), 금선동
김두환 화백
작업실 (예산읍 505-3번지)
천(金仙洞天), 일봉(一峰)
등여러가지로부른다.
충남일원에서손꼽히는부유한집안환경과상대적으로개화된가풍의영향으로일찍이서
울유학이가능했다.1932년경성양정중학교를졸업하고일본으로유학을떠났다.
일본가와바타화학교(川端學校)를졸업한후선생은현재의무사시노미술대학인당시동경
제국미술학교서양화과에입학했다.당시동경은우리나라가서구미술을접할수있었던거
의유일한통로였다.근대일본미술교육기관을대표하는곳으로동경미술학교와동경제국미
술학교를들수있다.
재학시절 과 등에 참여하고 등에 출품하
여 연속 3회 입선하는 등 다수의 대회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1940년 제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총10여회이상의개인전을열었으며다수의단체전에참여했다.
일본제국대학졸업후한국으로돌아온선생은1946년부터6년간예산농업중학교에서미술
교사로재직하면서작품활동을이어갔다.
당시예산에서‘김두환회화연구소’를연작가는고암이응노,나혜석등당대를대표할작가
들과의교류를통해작업에대한연구를쉬지않았으며,당시의작품들은예산인근의향토적
서정이두드러지는풍경과민속적인것을특유의두텁고깊이있는색조로표현한것이었다.
거칠고격정적인필치와과감한색채의운용은일견인상파를연상시키기도하지만선생의
작업에서특정한장르나영향관계를파악한다는것은대단히어려운일이다.
1949년제1회국전에경복궁후원에서그림이입선했고,그다음해에터진6.25전
쟁때에는종군화가가되어머리를다친피난민애기엄마를치료해주는위생병을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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