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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군이원면이원방조제(?태안문화원)
태안 주민들은 태안반도가 낙지 모양의 지형이라고 말한
원을 모아서 ‘원[堰]’을 막아서 농토를 넓혔다. 간척을 해
다. 태안읍이 몸통이고 사방으로 낮고 좁은 구릉이 바다
서마련한몇마지기땅은측량도하지않았고,등기를하
로길게뻗은지형을빗댄말이다.각지역을잇는도로는
지않는경우도허다했다.
능선을 따라 뻗어 있다. 걸어서 이동하기도 하지만, 배를
그런데‘원뚝’[堤防]을막았다고해서곧바로농사를지을
타고가는것이편할때도많았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벼가 죽지 않을 정도로 ‘간
낮은구릉에는군데군데소나무가군락을이루고있으며,
기’[鹽分]가 빠지려면 최소한 4~5년은 기다려야 했다. 수
종종도로양쪽으로바다가내려다보이기도한다.가옥은
로를 만들어 간기가 씻겨 나가도록 했고, 산에서 흙을 실
도로와 바다 사이 완만한 경사지에 군데군데 자리 잡고
어다가 복토를 하기도 했다. 간기가 심하지 않아 보이는
있다.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갯벌은 주민들의 삶의 터
육지 가까운 곳에 시험삼아 심어서 벼가 자랄 수 있는지
전이었다. 낙지와 조개를 채취하였고, 소금을 구워서 생
도살펴보았다.
계를 유지하였다. 때로는 간척을 했다. 태안에서는 아들
원뚝을 막으려면 결코 적지 않은 비용이 들었다. 자본이
이 결혼하면 집과 함께 약간의 농토를 물려주는데, 분가
부족한지역주민들은원뚝을막은후에농사를짓기도전
한 아들은 주변의 숲을 일구고 갯벌을 메꾸어 논과 밭을
에 원뚝 안의 토지를 분할하여 매각하는 경우가 허다했
넓히는것이이지역의상속관행이었다.
다. 이번 조사에 응했던 소원면 송현리 이은형은 1970년
사람들은 태안군의 간척사업의 경우, 1984년에 준공된
대 숙부와 아버지를 포함한 친족 3인이 간척하는 광경을
천수만의 A?B방조제 또는 2009년 준공된 이원방조제
직접 목격하였다. 1972년 숙부가 이웃 주민을 인부로 고
정도를알고있다.그러나서?남해안에서바다의간척은
용하여 ‘단 조금’, 즉 조금 전후의 15일만에 흙으로 원뚝
항상 있었던 일이다. 강화도는 대몽항쟁기부터 섬과 섬
을 쌓았으나, ‘장벌에 소똥이 뜨는’ 10월 사리에 뚝이 터
사이를 막는 등 꾸준하게 간척이 이루어졌다. 섬 전체 면
지면서실패했다고한다.바닷가에소를풀어서키우기도
적의⅓정도가간척평야일정도이다.태안반도에서도원
했는데,사리때물이많이들면소똥이뜬다는이야기다.
을 막는 일은 흔했다. 대규모 간척사업이 진행되기 했지
이듬해친족3인이돈을모아서돌을쌓아서보강한끝에
만, 때로는 혼자서 또는 친척이나 주변 지인들과 함께 재
120마지기를간척했다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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