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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김구와 덕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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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뿐, 문은 문대로 심(心)은 심대로 갈라졌으니 이것은 문을 재(才)로써
말한 것이다. 관도(貫道)의 문은 어디나 사용되는 문이요, 사화의 문은
쓰여서는안 될문이다. 어디나 사용되는문은 방책(方策)에있는데 모두
정심(正心) · 수심(修心)의 방법일 뿐이다. 그러나 지금 문을 하는 자들은
몸에체득하지도않고일에베풀고, 한갓사화로써아름다움을살필뿐이
니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20)
이것은도문일치(道文一致)의사상으로서, 사장파를겨냥한것이라
하겠다.
1519년 기묘사화가 일어났다. 그는 조광조 등 동지와 함께 옥에
갇혔다. 신진사류의리더라는위상때문에조광조· 김정과함께사형
으로정해졌으나, 중종의 특명으로장배(杖配)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당시의 ?옥중상소(獄中上疏)?에서 자신들이 ‘사화(士禍)’를 당한것이
라고 주장하였다.
…… 성조(聖朝)를 만나 경악(經幄: 경연)에 드나들었습니다. 가까이서
성덕(盛德)을 입어 우직한 충정[愚衷]을 펼치며 다하다가 뭇사람의 시의
(猜疑)를 범하였습니다. 우리 임금을 요순과 같은 임금이 되도록 바랐을
뿐, 어찌 제 몸을 위해 일을 도모하였겠습니까? 하늘의 해가 밝게 비출
것입니다. 다른 사심(邪心)은 없습니다. 다만 사류(士類)의 화가 한 번 열
림에, 장차 후일의 나라 명맥을 염려하지 않겠습니까.
21)
조광조가올린‘옥중상소’와다르지않다. 목숨이경각에달린즈음
에도 자신들의 수난을 ‘사화’라고 한 기개가 대단하다.
1519년11월16일체포되어의금부에하옥되고, 경상도개령(開寧:
지금의김천시일원)에부처하라는명이내렸으나, 12월17일에귀양
20) ?중종실록?, 9년(1514) 3월 4일 丁卯條.
21) ?自菴集? 권2, 7a, ?獄中上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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