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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한문준(韓文俊)(1117~1190)
고려중기의문신으로본관은대흥이며평장사한유충의아들이다.고려사권99한문준전에의
하면그는성품이맑고바른위에탈속한기품을타고났으며어려서부터글을잘지었다고한
다.그래서그의부친한유충이“우리가문을일으킬사람은반드시이아이일것이다”라고말했
다고한다.
그의어린시절은10여세때(1126)이자겸의난을겪으며그결과새로책립한선평왕후(宣平王
后)김씨의인척으로그의부친이크게발신하여재상의지위에오르자유복한환경에몸담게된
다.그러나묘청의난(1135)이일어나자대원수김부식과토벌과정에서불화가일어중군병마사가
군무를방해한다고상주하여군기를관장하던한유충이충주목사로강등되며권력싸움의한파를
겪는다.
1142년(인종20)김부식이은퇴하자그의부친이중앙부서로복직되어인사,군기,재정을담당
하게되었다.이로부터문준은튼튼한후견인을갖게된다.그가언제등과하였는지는기록에없으
나인종조에등과하여재명(才名)을떨쳤다고한다.30세되던1146년인종이서거하고그의아버
지도그해에죽으니정치후견인을잃은그는주로외직으로근무하였다.장주(長州함남정평)장
흥,남원3군의부사와남경(서울)의부유수를역임하는데곳곳마다선정을베풀어칭송을들었다.
그의외직은그에게있어절대적인전화위복이되었다.그당시의중앙정치무대는무신에대한경
멸과차별대우가도를지나쳐마치역부와같았다한다.거기서김부식의아들김돈중은정중부의
수염을태워분노를쌓이게했으며의종은이러한무신들의불만을아랑곳하지않고문신들과밤
늦도록연회를계속하고무신들은그들을경비하느라배고픔에허기져있었다.쌓이고쌓인불만은
정중부등의무신들이왕의보현원행차에거사를거행하기로하였는데가는도중오문앞에서수
박놀이를하다대장군이소응이늙어실수를하자문신한뢰가이소응의뺨을때리는광경을보고
분노가폭발하여그자리에서모든문신을죽여버리고의종을폐한다.이를무신의난이라하는데
한문준은외직에있어화를면하고명종초에추밀원우선선에뽑혀부사에승진하였는데송유인
(宋有仁)에게거슬려판사재지사로강등되었다.
이후여러관직을거쳐1180년참지정사보문각태학사판예부사(寶文閣太學士判禮部事)가되고
이어1182년정당문학이되어재상자격으로과거시험을주관한다.
1183년경대승이병사하자병권의책임자인정당문학판병부사(政堂文學判兵部事)가되었다.
1183년(명종12)에는문하시랑평장사판이부사(門下侍郞平章事判吏部事)가되었다가1186년(명
종16)70세의나이로치사(致仕)하니매사에공정하다는평을들었다.그가죽은후명종은3일철
조(三日輟朝)하였으며정의(貞懿)라는시호를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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