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285페이지

19페이지 본문시작

도 작가의 취향에 따라 대구를 구사할 수 있다. 율시에서는 이 대구를 얼마나 잘
구사하느냐에 따라 시의 가치가 좌우되는 수가 많기 때문에 시인들은 특히 대구의
구사에 많은 공력을 드렸다. 뛰어난 대구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고
이를 늘 감상하려는 의도에서 판에 새겨 기둥에 걸어 놓게 되기에 이른 것이다.
주련의 내용은 인격 수양에 도움이 되는 것, 수복강녕(壽福康寧)을 기원하는 것,
아름다운 풍광을 읊은 것, 자손들에 거는 희망, 부처나 공자의 가르침을 기록한
것 등 다양하다. 여기에 쓰이는 글귀는 옛날부터 전하는 시문을 많이 이용하는데,
때로는 새롭게 창작한 것을 새겨 넣기도 한다. 주련의 글씨는 선대(先代)의 유명
서가(書家)나 당대의 명필들이 쓴 것을 새겨서 예술 작품으로서의 가치도 지닌다.
우리 선인들은 이러한 주련을 개인의 집이나 누각, 정자, 사찰, 궁궐, 향교, 서원
등 생활 공간의 곳곳에 걸어 놓아 수시로 보고 감상하면서 인격 수양에 힘쓰고
멋과 운치를 누렸다. 전국 곳곳의 고택이나 유적지, 사찰, 고궁 등에 널려 있는 주련은
선인들이 일상 속에서 멋과 운치를 누리고 수양에 힘쓴 생활문화의 자취이다. 이러한
문화 유산이 대부분 어려운 한문으로 기록되어 있어, 늘 우리 곁에 있으면서도 한글
전용의 여파로 아무런 의미도 발휘하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문화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주련의 풍습은 중국의 오대(五代)시대에 시작되어 명(明)·청(淸) 시대에 성행하였
으며, 그 후로는 한자 문화권의 일상 생활에 깊이 자리하게 되었다.
주련의 유래는 도부(桃符)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일찍이 진(秦)·한(漢)
이전 시대에 중국의 민간에서는 한 해를 보내면서 도부(桃符)를 걸어 놓는 풍습이
있었다. 이 도부는 정월에 복숭아 나무 판자에다 전설 속의 귀신인 신도(神?)와
울루(鬱壘)의 형상을 그려서 문의 좌우에 걸어 놓고 잡귀를 쫓아내는 의식으로 삼은
것인데, 뒤이어 그림 대신 그 이름을 써서 붙였다고 한다. 귀신은 복숭아 나무를
무서워한다고 믿어서 악귀를 쫓는 효험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풍습이 면면히 이어져서 오대 시대에 들어서는 시문의 연구(聯句)를 복숭
아나무판에 새겨서 걸어 놓기에 이르렀다. 특히 봄이 시작되는 새해에 복을 비는
소망을 담아 이런 문구를 걸었기 때문에 춘련(春聯)이라고도 불렀으며, 이는 지금도
입춘이 되면 대문에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 등의 문구를 써 붙여
놓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이후로 명대(明代)에는 도부 대신 종이에 글을 써 붙이는
현판의 이해
19

19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