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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들이 나쁜 지견이 많이 없었기에 갑자기 하나의 기틀이나 경계가 주어지는
한 마디 가르침에서 깨우치는 것만 못하다. …마음보가 똑똑한 자는 도리어 똑
똑한 마음보가 장애가 되어 깨달음을 한숨에 터뜨릴 수 없다. 설사 똑똑한 알음
알이 위에서 배우더라도 자기 본분사(
) 위에서는 갈수록 더 힘을 얻지 못
하게 된다.
아둔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니 아둔한 것은 오히려 축하받을 일이다. 똑똑한 마음이야말로
오히려 깨달음을 한숨에 터뜨릴 수 없게 하는 장애가 된다. 깨달음의 길에 있어 똑똑한 마음은 추운
겨울의 부채처럼 쓰일 데가 없다. 중요한 것은 역시 마음을 내는 일이다. 분별하는 마음을 부수고,
고요한 삼매에 끄달리지 않으며, 반드시 이번 생에 깨치겠다는 굳센 믿음을 가진 마음, 그리하여 갑자
기 목숨조차 한 번 버리는 곳에서 바로 깨칠 수 있도록 자기 마음을 알아가는 것, 이것이 대혜종고
스님이 당부하는 공부의 핵심이다. 대혜 스님의 공부를 삶으로 바꾸면 스님의 말씀은 현대인들의 일상적
가르침으로 전환된다.
대혜 스님의 일갈이 단순한 노스님의 호통이 아닌 것은, 바로 지금 이번 생에서 무언가를 끝장내겠
다는 단호함과 치열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서로 다른 문제 위에 서 있다. 그러므로
이 순간 필요한 건 지금 나의 문제를 기어이 뚫고 넘어가겠다는 용기다. 차가운 겨울 바람 앞에 선 사람은
자신이 좀 더 따뜻한 옷을 입어야 한다는 걸 금세 안다. 목이 마른 사람은 어디에서든 자신의 갈증을
해결할 물을 구하기 위해 절실히 물을 찾는다. 요컨대 공부란 바로 이렇듯 내 자신에게 절실한 문제
들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공부란 내가 아는 지식을 활용해 또 다른 지식을 첨가하고 쌓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내 삶의 실제적인 진전을 위해 쓰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총명한 사대부들이
어째서 산속 선방의 스님에게 깨달음의 지혜를 구해야 하는가. 대혜 스님은 사대부들의 지식들이
오히려 자신의 삶을 구원할 지혜를 구하는 데에는 방해가 된다고 말한다. 요컨대 지혜와 지식은
다르다. 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어떠한 힘도 되지 못하고 용법을 갖지 못하는 앎은 단지 지식
일 뿐이다.
선사(
)답게, 대혜 스님 역시 한 순간에 확연히 깨닫는 경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요컨대 깨
달음은 분명히 돈오(
)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깨달음이 순간적이고 돌연
히 온다는 말과 수행자의 꾸준한 공부가 상호 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진부한 말로
비유하자면, 깨달음은 순간일지 몰라도 그 깨우침은 언제나 성실함과 절실함에 바탕하기 때문
이다. 이런 까닭에 역설적이게도 모든 깨달음의 과정에는‘생과 사를 넘는’치열함이‘반드시’
있다. 중요한 건 돈오(
)냐 점수(
)냐가 아니다. 이 둘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어떤 의
미에서 돈오와 점수는 깨달음을 독려하는 서로 다른 층위의 방편일 뿐이다. 삶의 지혜를 깨
달은 사람에게 돈오와 점수의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반드시 이번 생에 깨닫겠다는 용
기란 내 안에 존재하는 수많은 분별심(경계)들을 넘어 서는 문제이기도 하다. 대혜 스님의
말에 따르면,
“진정한 적멸이 눈앞에 나타나려면 반드시 타오르며 일어났다 사라지는 번뇌
속에서 훌쩍 이 경계를 한 번 뛰어 넘어야만”한다. 이때의 적멸이란 크게 깨달아“가슴 속
이 환해져 백 개 천 개의 해와 달”
을 갖는 것이다. 즉 모든 경계로부터 확연해지게 된다는
것! 삶이란 가슴 속에 가득찬 백 개 천 개의 해와 달을 갖는 그토록 명백하지만 확연한 무
엇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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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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