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37페이지

16페이지 본문시작

1970년대 : 록 음악과 포크, 청년문화
1970년대를 대표하는 두 개의 장르는 록 음악과
포크다. 그리고 이 둘을 잇는 것은 바로 청년문화
이며, 이 청년문화는 당시의 정치적 현실과 연결
되어 있다. 이렇게 1970년대의 대중음악은 단지
음악 뿐 아니라 당시의 사회상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신중현과 산울림 등의 록 음악은 한
국 대중음악에 전에 없던 소리를 만들어냈으며, 김민기, 양병집, 한대수,
양희은 등은 미국 포크와는 다른 독특한 스타일의 포크 음악을 만들고
불렀다. 고고클럽과 통기타 클럽, 음악다방 등이 청년문화의 산실이 되었
으며,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청춘을 불살랐다.
그러나 당시의 정권은 청년문화를‘퇴폐’
로 간주했고, 수많은 노래
들을‘금지곡’
으로 지정했다. 1975년의 대마초 파동은 한국 대중음악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으며, 이후 록과 포크는 대학가를 중심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대학가요제>를
통해 스타가 된 수많은 캠퍼스 그룹사운드가 대표적인 예다.
1980-1990년대 : 조용필, 음악의 다양화, 아이돌과 인디 음악의 등장
1980년대 음악계는 조용필로 시작해서 조용필로 끝난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과장일지 모르겠으나,
조용필이 1980년대의 음악에 남긴 그림자는 그만큼 크고 거대하다. 그는 트로트, 록, 팝, 국악 등
가능한 모든 영역에 손을 댔고, 경이적일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또한 1980년대는 나미와
김완선, 소방차, 박남정 등으로 대표되는‘댄스 가요’
가 음악계의 전면에 등장한 시기이기도 하다.
신서사이저와 드럼 머신 등의 새로운 기술적 발명품에 힘입어 만들어진 이러한 음악들은 당시의 청소
년들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더불어‘언더그라운드’
와‘다운타운’
이라는 이름으로 통칭되는,
대학생 취향의 섬세한 포크와 블루스 음악이 유행했다. 들국화, 신촌블루스, 김현식, 어떤날 등의 뮤지
션들이 대표적이다.
16 |
2010_4

16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