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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문화원
문화의 향기를 담아내는 소담옹기
[10] 효자 김익생 <金益生>
1388년(고려 우왕 14)~1450년(세종 32)
호랑이 도움으로 배 구하여 어머니 병환 고친 효자
조선 초기의 무관이자 효자이다. 가문의 본관
은 김녕(金寧)이다. 고려 말의 충신으로서 고려
멸망 후 조선 조정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아
산시 도고면의 도고산 자락에 들어와 살기 시
작한 김질(金秩)의 아들이다. 다른 이름인 자
(字)는 정부(靜夫)이고 호(號)는 성재(省齋)
이다. 그는 1421년(세종 3)에 남포진 병마절제
사 등 여러 관직을 거쳤으며, 1428년(세종10)
에는 중국 명나라의 황태자 책봉을 축하하기
▲ 김익생의 묘
위해 파견한 진하사(進賀使)의 부사(副使)로
북경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 뒤 우군총제 등을 역임하고 1433년(세종 15) 하정사(賀正
使)로 또 북경에 다녀왔다. 그 후에도 한성부윤, 경주부윤 등 많은 관직을 거쳐 1443년
(세종 25)에 다시 중추원부사(종2품)에 올랐다. 그의 딸이 낳은 아들이 사육신 중 한 사
람인 박팽년(朴彭年)이다. 그는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기로 소문이 자자하였다. 그
가 일곱 살 때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어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하였다. 그 어머니가 한겨
울에 배를 먹고 싶다고 하자 도고산 너머에 있는 절에 배나무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길을
나섰다. 어둔 밤에 산길로 들어서니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등에 태우고 절 마당까지 갔
다. 배나무의 까치둥지에서 기적처럼 어렵사리 배를 구해다가 드리니 어머니의 병이 나
았다. 또한 한겨울에 잉어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어떻게 하면 잉어를 구할 수 있을까
걱정하다가 꿈을 꿨다. 꿈에 나타난 사람이 가르쳐 준 연못을 찾아갔더니 연못 위의 얼음
이 갈라지면서 커다란 잉어가 튀어나왔다. 그 잉어를 갖다 고아 드리니 어머니의 병이 깨
끗이 나았다는 전설도 있다. 그런 지극한 효행으로 이미 1405년(태종 5)에 효자 정려를
명받아 아산시 도고면 도
산리에 정문을 세웠으며
지금까지 잘 관리되어 전
해지고 있다.
효자 김익생 정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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