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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순천까지 / 358.7km
서울에서 초계까지/168.7km
◈ 1597년(정유년) 4월 1일
◈ 5월 14일~5월 25일
이순신 장군은 옥중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28일 만에 석방된다.
장군은 순천을 출발하여 송치(순천시
옥에서 나온 장군은 남대문 밖 윤간이란 종의 집에서 조카 이분과 이
서면 학구리)를 거쳐 구례현에 도착
봉, 차남인 울을 만난다.
했다. 구례현에 도착한 장군은 도체
영의공 이순신(李舜臣)을 비롯하여 정탁, 전 도원수 김명원, 판서 심회
찰사 이원익을 만나는 등 25일까지
수, 참판 이정형, 대사헌 노직, 동지 최원·곽영 등이 각각 인편을 보
10일간 머물렀다.
내 위로와 안부를 전한다.
◈ 4월 3일
◈ 5월 26일~6월 1일
장군은 서울을 떠나 과천과 인덕
◈ 4월 2일
구례현을 떠난 장군은 석주관(구례군
원(지금의 안양)을 거쳐 수원에
장군은 성안으로 들어가
토지면 송정리)과 악양(하동군 악양
도착한다. 수원에서 경기관찰사
영의정이었던 유성룡을
면 정서리), 하동, 청수역(하동군 옥
의 아래에서 심부름을 하는 이름
방문하고 밤이 깊도록 얘
종면 정수리)을 거쳐 6월 1일 단성
모를 군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지
기를 나눈다.
부근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낸다.
◈ 4월 4일
◈ 6월 2일~6월 8일
◈ 4월 5일~10일
수원을 출발하여 독성을 지나 오
장군은 단계(경남 산청)와 삼가현(경
산에 이르러 황천상이란 사람에게
외가가 있는 아산 염치읍
남 합천)을 거쳐 초계로 향하는 길에
말을 내어주는 도움을 받았다.
백암리에 도착해 선영을
도원수 권율의 진영이 가까운 마을에
다시 평택에 도착한 이순신은 그
참배했고 친척과 이웃들의
거처를 정하고 8일에는 도원수 권율
날 밤 이내은손(李內隱孫)이란
위로와 환대를 받았다.
을 만났다.
사람의 집에서 밤을 보냈다.
◈ 4월 11일~18일
◈ 6월 9일~7월 18일
11일 장군의 어머니 변씨가 아들을 보기 위해 여수와 근접해 있는 곰
장군은 권율의 휘하로서 초계에 머
내를 출발하여 안흥량(서산 근흥면)을 지나서 아산으로 올라오던 중
물렀다. 수군통제영 소식을 계속해서
별세했고(향년 83세), 13일 어머니를 마중하려고 바닷가로 가는 길에
접할 수 있었고 7월 18일 원균이 이
부음을 들었다. 그 배는 인주면 해암리에 도착하여 부음을 전했다.
끄는 삼도수군이 칠천량해전에서 전
장군은 해암에서 2일간 상례 준비를 서두르고 17일에는 도사의 독촉
멸했다는 패전소식을 듣게 되었다.
을 받아 장례를 제대로 치를 수 없었다.
◈ 4월 19일
◈ 4월 20~5월 13일
노성(지금의 논산군 노성면)과 여
아산을 떠난 장군은 회·
산(지금의 익산), 삼례·구례 등을
울·면·해·봉·분·완
참고문헌
지나 4월 27일 순천 송원에 도착
등 아들과 조카들을 데리
평역 난중일기 김경수편저
했다. 장군은 5월 13일 초계로 떠
고 온양과 보산원을 거쳐
나는 17일 동안 송원(순천시 서면
이순신연구소 홈페이지
일신역(공주)에서 하루를
운평리)에 머물렀다.
보냈다.
충무공이순신 조성도 著
19
아산타이딩
A-san of Ti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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