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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를연합하여도우며,병조판서이덕형이내응한다.’하니,중외가놀라민
심이술렁거렸다.”
『선조실록』권77,29년7월11일(丙子)
이기사는호서지역의방비가허술한틈을타서이반된민심을모은
이몽학이민란을일으켰다고소개하고있다.‘백성을편안히하고나라를
안정시키는일’이라는말에,호미를던지고민란에동조한사람들이‘수만
명’이라는다소과장된표현을하고있다.그렇지만민란군의기세가그
만큼대단했음을의미한다.
이와동시에지배층들이민란군의기세에당황했었음을반증하는것
으로보인다.그리고‘크고작은고을에방비가허술’했다는표현은,외란
중인상황이라지방의방비가허술했음을보여준다,
실록의기사가다른기록에비해민란군의수를과장되게표현하기는
했지만,“이때에인민들은난리를겪어곤핍한데도백방으로침탈을당
하여한번속여서미혹시키는말을듣고따르는자가몰려와서며칠이채
안되어1만여명에이르렀다.”(『난중잡록』권2갑오7월)는기록역시유
사한표현을하고있다.이들기록을종합해보면,민란군의규모가대략
1만여명이었던것으로추정된다.대부분의기록은지배층에의한수탈
로고통스런생활을하던백성들이자발적으로민란에동조했다는사실
에동의하고있다.민란군을모집하는과정에서사족들과의병장들의이
름을도용하기도했다.“이몽학이역모를일으킬당시홍산등지몇고을
백성들로서참여하지않는자는거의없이호응하는자가대부분이었는
데…”라는기사를보면,다양한신분의사람들이민란에가담했음을확
인할수있다.참여했던인사들의신분을살펴보자.
민란의주동자인이몽학과한현,임천군진입시적극가담했던이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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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당시이몽학의난과청난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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