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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현(
자는 돈오
요 호는 초은
이며 유현
의 증손이다 실학에 잠심하여 가
정에 전습하였고 문장과 학문으로 고을의 천거를 받아 늦게 송화현감에 제수 되었으나 도리
어 즉시 인수를 풀어놓고 청백을 스스로 지켜 냉담하였다 효도하고 우애하며 덕행이 뛰어나
선비와 벗들이 존중하여 추대하였다.
이정렬(
자는 군서
이요 호는 퇴호
이며 본관은 예안이니 유현
의 후손이다
문과 급제하여 한림 규장각 직학사를 거쳐 참판에 이르렀다 고종 황제가 퇴호 라는 호를
내렸으며 영친왕으로 하여금 글씨를 써서 주었다 신축년
(1901 )
년 에 국사가 그릇 되어감을 보
고 직언으로 극간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여 관을 벗어 걸어놓고 고향으로 돌아오니 당년 34
세였다.
이정운(
호는 오사
요 본관은 연안이니 부사
상민
의 후손이다 정조때에 문과 급제
하여 형조판서를 지냈고 문장과 절의 높은 행실이 당세 제일이라는 명성을 들었다
이조망(
자는 망지
요 본관은 연안이며 야계
익태
의 손자이다 영조때에 문과 급제
하여 정언을 지냈다 묘는 둔포면 신항리에 있다
이종덕(
자는 회수
요 호는 창백헌
이며 본관은 완산이니 쌍호당
단석
후손이다 홍매헌의 문인으로 학문과 경술이 선비들의 추대를 받았으며 전재 임원회와 도의로
교제하였다.
이지함(
? (1517 1578)
자는 형중
이요 호는 토정
이며 본관은 한산이니 문열공
의 후손
이다 학행으로 이조참의에 추증되었고 고종때에 효행으로 효자정려를 명했다 유고가 있으며
영중추부사 송근수가 묘갈문을 지었다.
이필춘(
본관은 전주이며 강양군
江 君
요의 후손인데 진사에 급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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