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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취(試取)하는 데에 공정성이 전혀 없어졌다. 그래서 선비들을 모아서 시
험하여 그 중에 우수한 사람을 뽑으니 법에 공정하고, 부정한 폐단이 생기
는 것을 막게 되었다. 그러나 시문(時文)을 숭상하고 그 사람의 현부(賢否)
는 논하지 않았으며, 한 사람의 안목에 따라 거취가 결정되나, 성인(聖人)이
다시태어나더라도이법은바꾸지못할것이다.
우리나라의 선거(選擧)도 이 제도에 따랐으며, 유명한 사람이나 큰 선비가
다 여기서 나와 빈빈(彬彬)하게 태평 시대에 쓰인 이가 앞뒤로 잇따라 나타
났다. 그런데 어찌하여 근년에 들어와서 시비와 호오(好惡)가 바르게 되지
못하고 조감(藻鑑)과 거취가 공정하게 되지 못하여, 마침내는 옛날부터 시
행해 오던 과목(科目)의 제도를 폐지하고, 천인(薦引)하여 쓰려고 하며 말하
기를‘과장에서 뽑은 바는 다 적당한 사람이 아니다.’하니, 이는 발 잘린
사람을 보고 천하의 신을 없애려는 것과 같으므로 또한 의혹스러운 것이 아
닌가?
그천인(薦引)한바는친근한사람이아니면사삿사람이라명성과실지가어
긋나서, 바탕은 아름답지 못하면서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대각(臺閣)에
퍼져 있어서 난정(亂政)의 폐단이 되었다가, 겨우 회복된 것은 모두 여기에
원인이 있는 것이다. 서로 번갈아 가며 추천하고 찬양하여 부정하게 끌어주
어 붕당(朋黨)을 만드는 것이 풍습이 되어, 조정의 관작을 자기의 사사 물건
으로 여기니, 삼대(三代)의 향거 이선하는 유의(遺意)가 아니요 곧 시정(市
井)의좀도둑이명예와이익을다투는추태(醜態)이다.아!괴이하도다.】
◎1518년(중종13)9월16일(계축)
김구를홍문관응교(弘文館應敎)로,정옥형·김식을사헌부지평으로삼았다.
◎1518년(중종13)9월25일(임술)
손주를 한성부 좌윤으로, 박영을 승정원 동부승지로, 최명창을 홍문관 직제
학(弘文館直提學)으로,김구를전한(典翰)으로삼았다.
【사신은 논한다. 박영은 선산(善山) 사람이다. 소시 적에 무예(武藝)를 업으
로 삼아 무과에 올랐다. 그리고 유학(儒學)의 서적을 통달하고 낙동강 가에
186│묵향의본향에서조선4대명필자암김구를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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