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197페이지
187페이지 본문시작
![](http://ebook.cnkccf.or.kr:8800/file/20081127_135754/page/1/187_1227766924_34/M.jpg)
묘는 음봉면 어라산 아래에 있으며 소재 이이명이 묘갈문을 지었다 신도비는 잠곡 김육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죽남 오준이 쓰고 전서를 참판 이정영이 썼다 그리고 정조의 어제와 어
필로 전수한 상충정무지비가 있다.
이 신
본관은 덕수이며 훈
의 아우이다 정묘호란
(1627 )
년 때에 종형 완
을 따라 의주에서 힘
을 다해 싸우다가 순절했다 정조때에 병조참의를 추증했다
이 열
자는 자흥
이요 본관은 덕수이며 충무공 순신
의 아들이다 선조때에 음사
로 벼슬에 나아갔다가 광해군 때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조반정으로 처음에는 충훈부 도사가 되었다가 형조 정랑이 되었다 집안에 비자가 있었는
데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 광해군이 그 비자를 취하고자 명령을 내렸으나 신자의 도리로서
임금에게 미색을 바치는 것은 불충이 된다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바치지 않았다.
이영성(
본관은 용인이며 문과 급제하여 정랑을 지냈다
이 완
)? ( ?
1627)
자는 열보
요 본관은 덕수이니 참판 희신
의 아들이며 순신
의 조카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부윤을 지냈다
. 19
세때에 숙부이신 충무공을 따라 종군하여 왜적 토멸
에 공을 세웠으며 갑자년
(1624 )
년 이괄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충청병사로서 반란을 평정
하여 자헌대부에 승차했다.
의주부윤으로 있을때에 정묘란
(1627 )
년 이 일어나 적과 싸우다가 순국했다 병조판서를 추증
하고 시호를 강민이라 했으며 충신정려를 명하여 현충사에 배향했다
이요신(
자는 여흠
이요 호는 율리
이며 본관은 덕수이니 풍암
의 증손으로
퇴계
의 문인이다
뜻이 돈독하고 학문에 힘쓰며 자기 자신에 대한 계율을 매우 엄격하게 하였다 선조때에 사
마에 올랐으며 퇴계선생을 주자의 백록동부를 써 주면서 격려해 주었다
이용현(
자는 용구
요 호는 반계
이며 유현
의 증손이다 벼슬을 경연 특진관
을 지냈고 신미년의 홍경래 반란을 당하여 그의 아버지가 총관으로서 정주에 출진하였는데
정주성이 함락되자 선전관으로 아버지를 위하여 몸을 던져 천리를 달려가 적도들의 목을 베
었다 반란이 평정된 후에 순무영으로부터 포상을 품계하여 공신의 녹권을 내려 표창했다
비문을 짓고 글씨는 죽남 오준이 쓰고 전서를 참판 이정영이 썼다 그리고 정조의 어제와 어
필로 전수한 상충정무지비가 있다.
이 신
본관은 덕수이며 훈
의 아우이다 정묘호란
(1627 )
년 때에 종형 완
을 따라 의주에서 힘
을 다해 싸우다가 순절했다 정조때에 병조참의를 추증했다
이 열
자는 자흥
이요 본관은 덕수이며 충무공 순신
의 아들이다 선조때에 음사
로 벼슬에 나아갔다가 광해군 때에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인조반정으로 처음에는 충훈부 도사가 되었다가 형조 정랑이 되었다 집안에 비자가 있었는
데 얼굴이 매우 아름다웠다 광해군이 그 비자를 취하고자 명령을 내렸으나 신자의 도리로서
임금에게 미색을 바치는 것은 불충이 된다하여 죽음을 각오하고 바치지 않았다.
이영성(
본관은 용인이며 문과 급제하여 정랑을 지냈다
이 완
)? ( ?
1627)
자는 열보
요 본관은 덕수이니 참판 희신
의 아들이며 순신
의 조카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의주부윤을 지냈다
. 19
세때에 숙부이신 충무공을 따라 종군하여 왜적 토멸
에 공을 세웠으며 갑자년
(1624 )
년 이괄의 반란이 일어났을 때에는 충청병사로서 반란을 평정
하여 자헌대부에 승차했다.
의주부윤으로 있을때에 정묘란
(1627 )
년 이 일어나 적과 싸우다가 순국했다 병조판서를 추증
하고 시호를 강민이라 했으며 충신정려를 명하여 현충사에 배향했다
이요신(
자는 여흠
이요 호는 율리
이며 본관은 덕수이니 풍암
의 증손으로
퇴계
의 문인이다
뜻이 돈독하고 학문에 힘쓰며 자기 자신에 대한 계율을 매우 엄격하게 하였다 선조때에 사
마에 올랐으며 퇴계선생을 주자의 백록동부를 써 주면서 격려해 주었다
이용현(
자는 용구
요 호는 반계
이며 유현
의 증손이다 벼슬을 경연 특진관
을 지냈고 신미년의 홍경래 반란을 당하여 그의 아버지가 총관으로서 정주에 출진하였는데
정주성이 함락되자 선전관으로 아버지를 위하여 몸을 던져 천리를 달려가 적도들의 목을 베
었다 반란이 평정된 후에 순무영으로부터 포상을 품계하여 공신의 녹권을 내려 표창했다
187페이지 본문끝
메뉴
- 첫 페이지로 이동
- 이전 페이지로 이동
- 다음 페이지로 이동
- 마지막 페이지로 이동
- 원본다운로드 : 통합압축 다운로드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