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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수물자를감당해야했다.여기에조선의작전지휘권이제한되는상황
까지벌어졌다.이와같이국가적으로엄청난혼란상황에도불구하고,
조선에서는성리학적명분론에함몰된‘재조지은’이고조되었다.그리고
명에서는‘황제의특별한은혜’가강조되었다.이시기사상적인면에서
도,현실과동떨어진이념과명분론이만연될뿐이었다.
지배층의무능과무책임으로야기된전쟁에서,백성들은전쟁의참화
와고통을온몸으로감수해야했다.“…불쌍한백성들은모두흉적의칼
에죽어가고,노모와처자식들은이리저리흩어져생사를알지못하니통
곡할뿐이다.…경상도관찰사가지난해초부터남쪽백성을대거동원
해서지키지도못할성을올봄까지쌓았지만완공하지못했고,농사철도
놓치는바람에백성들의원망소리가길에가득했다.…군대를모집하
기도전에먼저도망갈생각을하고,유언비어가퍼져서굳은의지를가
진사람이없다.”와같은오희문(1539~1613,본관;해주)의『쇄미록』기록
은,당시백성들이처한고통스런상황을잘보여준다.
임진왜란이발생한지4년이지난1596년은강화기간으로전쟁이소
강상태였지만,여전히조선땅곳곳에서는조·명연합군과일본군의칼
끝이서로를향하고있었다.설상가상으로계속된흉년으로백성들의일
상은참혹한일상그자체였다.전쟁으로굶주림을참지못한사람들은
도적이되거나,유민으로떠돌아다녀야하는상황이었다.
1592년4월30일한양도성을벗어나피난갔던선조가,1년5개월만
인1593년10월1일에서울로돌아왔다.그렇지만전국적으로확산된대
기근과전쟁의고통으로,백성들의삶은전혀나아지지않았다.서울에
쌓여있는시체를처리할방법이없다는보고와성밖에쌓아놓은시신
을날짐승과들짐승들이파먹고있다는보고는,당시백성들의고통스런
현실을잘대변하고있다.일본의재침에대비한다는명목으로진행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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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의청난공신임득의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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