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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서산천수만의옛모습
처에는풀이많기에깔을베기에어려움은없었다.
겨울철에는 여물을 죽으로 쑤어 먹인다. 짚을 소 구수에 넣고 겨 삶은 것을
짚 위에 끼얹어준다. 이때 짚은 작두로 썰어서 넣으므로, 소를 키우는 집에는
여물 써는 작두가 하나씩 보관되어 있기 마련이다. 소에게 주는 가장 좋은 먹거
리는 콩깍지를 넣고 쑨 죽이고, 겨울철에는 넣을 것이 없으면 고구마넝쿨 말려
둔것이라도넣어죽을쑤어준다.
해변 마을 주민들의 생활은 농촌 보다 어려움이 많았다. 주식인 식량이 적었
기에 개펄에 나가 쉼 없이 일을 했다. 마룡리 김복연 씨의 생활은 다음과 같았
다고한다.
김복연 씨는 안면도에서 해의쌀[김]을 뜯어서 발로 떠서 팔아 가계 경제에 많
은 도움이 되는 삶을 살다가 이곳으로 시집왔다. 이곳에는 해의쌀도 없어 환전
48)
할수있는것이적었다.
마룡리로시집와서농지가별로없어고생을많이했
는데, 특히 가뭄이 드는 해에는 그 고생이 더욱 심했다고 한다. 가물면 아무 것
도 구할 수가 없었기에 부잣집에 가서 장례로 보리나 쌀 등을 얻어 온다. 하루
일당으로 쌀 세 되 정도를 쳐주었기에 한 말을 얻어다 먹으면 밭 매고, 모심고,
논을 매는 일을 각기 하루씩 해서 사흘간 일을 해준다. 마룡리 주민들은 주로
강당리에서장례를얻었다.
장례를 얻기 어려우면 개펄에서 굴을 채취해 가져간다. 굴 한두 사발을 가
져가면 보리쌀 한 두 되와 바꾸었는데, 굴이 해물 중에서 가장 가격이 많이 나
갔다. 굴을 팔러 다닌 것은 제보자(88세)의 시부모 세대로 시집와서 보았을 뿐이
48) 제보자는 시집올 때에 안면도의 수애나루에서 배를 타고 창리로 왔다. 가마를 배에 싣고 왔기에 배에서
내려서 곧 가마를 타고 마룡리까지 왔다. 안면도 집을 떠나 시댁까지 오는데 하루 온 종일이 걸렸다. 친
정을 오가야 했기에 일년에 두 번 나루삯을 낸다. 보리와 벼를 수확한 후 각기 한 말씩을 나루주인에게
가져다준다. 나루삯을 내면 그 집 식구 전체가 배를 이용할 수 있다. 당시 나루를 이용하는 사람이 한 사
람이라도 있으면 나룻배를 운행해서 옮겨 주었는데, 노를 저어 수애까지 가면 30분 정도가 소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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