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883페이지

185페이지 본문시작

그물은 싸리나무 껍질로 만들었다. 육지에서 싸리나무 껍질을 사다가 노끈으로 만들
고 그 노끈으로 그물을 만드는 것이다. 그물의 길이는 30~40발쯤 되었고, 앞이 넓고 뒤
는 좁았다. 짚으로 만든 동아줄은 매년 새로 하였다. 음력 2월이면 말뚝을 세우고 3~4
월고기를잡고꺼내온다.볏짚이오래견디지못하였기때문이다.그러나그물과기둥은
오래 사용하였다. 오래 사용하기 위하여 그물은 매년 약물을 풀어 솥에 넣고 끓이는 소
위 갈들이는 작업을 하였고, 말뚝은 4월이 지나면 빼다가 장벌에 올려놓고 말렸다. 이렇
게 하면 10여 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주벅을 보러 갈 때와 올 때는 노래를 불렀다. 특히
주벅에고기가많이들을때는북을치면서만선의노래를불렀다.
녹도에서는 주벅으로 또는 주낙으로 많은 조기를 잡았다. 그래서 전국에서 주낙배가
모여들고 상고선이 모여들었으며 어업조합이 만들어졌다. 고기의 판매는 어업조합에서
취급하였다.고기는모두어업조합에서경매에의해팔고,고기를잡은사람들은전표를
받아현금과바꾸었다.
녹도의 어업조합이 대천 어항보다도 먼저 만들어졌다. 무창포 다음으로 안흥조합이
생기고 이어서 녹도조합이 만들어졌다. 녹도 어업조합에는 5~6명이 근무하였는데, 입
찰하고 고기 달아주고, 고기 세어주고, 사무 보는 사람 등이 있었다. 그가 어렸을 때 조
합장은 최종화였다. 이렇게 일찍 생긴 어업조합이 대천에 보령수협이 생기면서 흡수 통
합되었다.모든자료는보령수협으로가져갔는데모두불태워남아있지않다.
일제강점기뿐만 아니라 한말에도 녹도는 서해 어업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많은 돈이
있었다. 그래서 대천장에서 녹도 사람을 찾으려면 갖신(가죽신)을 신은 사람만 찾으면
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돈을 벌은 사람들은 모두 돈을 주고 관직을 샀다. 그래
서녹도에는정참봉,이참봉,박참봉등수많은참봉들이있었다.그의 할아버지도관직
을샀는데강화창고참봉이라고했다.
주벅을 매는데는 볏짚 천여 뭇, 기둥, 그물 등이 필요하고 이것으로 그물을 만들어 설
치하는 데는 많은 인력과 비용이 들었다. 이에 녹도의 어민들은 참봉이라 불리는 전주
들의 돈을 얻어다가 사용하였다. 전주들은 볏짚값과 경비로 쓰고 먹을 쌀 10~15가마를
보령시 183

185페이지 본문끝



현재 포커스의 아래내용들은 동일한 컨텐츠를 가지고 페이지넘김 효과및 시각적 효과를 제공하는 페이지이므로 스크린리더 사용자는 여기까지만 낭독하시고 위의 페이지이동 링크를 사용하여 다음페이지로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상단메뉴 바로가기 단축키안내 : 이전페이지는 좌측방향키, 다음페이지는 우측방향키, 첫페이지는 상단방향키, 마지막페이지는 하단방향키, 좌측확대축소는 insert키, 우측확대축소는 delete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