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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노학노선(老鶴勞仙:학처럼젊은마음으로신선같이사는것)으로살도록각읍면노인회를
순방하며정신교육에힘쓰시니,이제는군내에명성이자자하였다.
원래 효성이 지극하고 남다른 숭조돈목(崇祖敦睦)사상을 갖고 계신 공께서 불유구(不踰
矩)의나이가되시니문중일에도적극참여찬란한선조님의행적재조명에힘쓰시었고종
중의 인정을 받아 1972년 성씨대종회부회장으로 취임 종무(宗務)를 강화하고 창령의 물계
서원을중심으로조상님의행적재조명에힘쓰셨다.1976년사단법인사육신현창회이사로
피선되시었고 드디어 1980년 창령성씨대종회 회장에 취임하시었고 전국 문중의 돈목과 숭
조정신을고취하여타성씨(他姓氏)의규범이되시었다.
공은 사회생활에 고위직(高位職)을 하신일은 없으나 본시 천성이 청렴결백하고 친화력이
강하며봉사심이투철하시어 저서양의큰바위얼굴같이주위의칭송을받으며묵묵히사시
다가 총회장 재임 중 1983년 1월 지병으로 별세하시니 부음을 들은 대종회 및 종원들이 구
름같이모여들어종회장으로공이사시던금치리후록에안장하고공의묘소입구대로변에
금암공사적비(錦岩公事蹟碑)를종중명의로건립하여공의유덕(遺德)을기리고있다.
공의배위(配位)는전주이씨로공과동년생으로공타계후3월후에졸(卒)하시니공과합
부(合?)하였다.인정이많고마음이고왔으며혼인후에불평한번안하시고사셨으니천생
연분으로 슬하에 장남 낙유(洛宥), 차남 낙일(洛一), 여식 낙희(洛姬)가 있다. 후세에 사는
이들의귀감(龜鑑)이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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