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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두웅(
자는 계명
이요 호는 은곡
이며 본관은 해주이니 응교
백천당
숙의
아들이다 효행이 특히 뛰어나 지평에 추증되거 정려를 명했다 문정공 도암 이재가 묘갈문을
짓고 문정공 오재순이 묘표문을 지었으며 문순공 남당 한원진이 묘지를 지었다
오명걸(
효자 수경
의 아들이며 효녀 정씨의 손자인데 지극한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겨 효자정
려를 세웠다.
오수헌(
자는
이요 본관은 해주이며 명신
윤겸
의 증손이다
. 92
세의 장수를 하여
수직으로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묘는 안산 잉화곡에 있다
오윤겸(
)? (1559 1636)
자는 여익
이요 호는 추탄
이며 본관은 해주이니 영의정에 추증된 희문
아들이다.
우계의 문인으로 벼슬에 나아가 삼년동안 정사가 되어 수로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광해군 때
에는 인목대비 폐모 논의를 준엄하게 배척하고 정인홍을 물리치고 퇴계와 회재 두 선생에 대
한 무고를 변호했다
벼슬은 영의정에 이르고 세자의 사부를 지냈으며 문집이 남아있다 구
암서원에 배향되었다.
오정방(
)? (1552 1625)
자는 영언
이요 호는 퇴전당
이며 본관은 해주이니 병조판서에 추증된 수억의
아들이다
.???
명종때에 무과 장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에 공을 세워 선무공신에 책록 되었다
광해군 때에는 인목대비를 폐위하자는 간신들의 주장을 배척하였고 갑자년에 이괄의 반란을
당하여 호가 대장으로서 인조를 모시고 공주에까지 호종했다 벼슬은 경상 절도사를 지내고
병조판서에 추증되어 시호를 정무라했다 영의정 이경석이 신도비의 비문을 짓고 현손 태주
가 묘지를 지었다.
오희문(
자는 비연
이요 본관은 해주이며 좌찬성
경민
의 아들인데 벼슬은 감역
을 지냈다
. 70
세에 친상을 당하여 묘소아래 여막을 짓고 거처하며
년동안 죽을 마시면
서 애통하였다.
청음 김상헌이 일찍이 말하기를,
사업이나 문장은 이루지 못했으나 집안에서의 행실은 순수하고 돈독하다 고 하였다
영의정을 추증했고 묘는 경기도 광주의 토당리에 있는데 후손 부제학 명신이 묘표를 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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