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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성만용(成萬鏞)(1907-1983)
공은본관이창녕이고휘(諱)는만용(萬鏞)
이며호는금암(錦岩)이다.창녕성씨의시조
는 휘(諱)가 인보(仁輔)로 공은 시조로부터
23대손으로 1907년 음(陰) 2월 29일 부친
기호(耆浩)공과 모친 김해김씨 기현(耆炫)
여사 사이에서 장남으로 충청도 서산에서
출생하였다. 그러나 나이 12세에 숙부가 봉
성만용
사적비문
산면장으로 연유 봉산면 금치리로 이거(移
居) 본군에 입향(入鄕하)였으며 이후 고덕초등학교와 면천 농업전수학교를 잇따라 졸업하
였으나가정형편때문에상급학교진학을포기하고가업인농사일에전념하는한편 틈틈이
책을 구입 독학으로 독서에 열중하여 인격도야와 지식을 넓히는 등 근면 성실히 사셨기에
입향한청년으로는보기드물게올바른품성과높은식견을갖추었으며원만하고행실이돈
독하다고주위에서칭송이자자하였다.
1945년 8월 우리 조국이 일제의 식민지로부터 광복이 되자 공은 조국의 독립을 앞당기기
위하여 예산지역의 각종 애국청년단체에 가입, 面內의 책임자와 郡內의 부책임자로 계시면
서풍부한지식과탁월한통솔력으로눈부신활약을펼치시어주위에서그능력을인증받았
으며면내를비롯한군내에서애국청년단체활동을기반으로조국독립의빠른실현을앞당
기기위하여신탁통치반대에앞장섰다.광복후에잠시공직인면에복무하시다가처음으로
지방자치를실시하자주위에서면장후보로나설것을권유함에극구사양하였으나과공(過
恭)도비례(非禮)라고강권(强勸)하며개인을위함이아니요면의발전을위하여주변에서
강도 높게 출마를 권고하자 부득이 출마를 결심 1956년 8월 초대 민선 면장으로 당선되어
취임후면정의쇄신과기강을확립하고면민의애로사항해결을위하여혼신의노력을다하
니 주변의 칭송이 자자하였고, 1960년 12월 2대 민선면장에 재선되시어 먼저의 경험과 탁
월한 행정수행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다가와 면의 장래에 서광의 빛이 보였으나 재취임 5개
월만에5.16혁명으로그직에서물러나시었으며후에다시사회단체와정당등에잠시참여
하시다가년치(年齒)가이순(耳順)이넘으시매이제는노인들의사회참여와복리를위하여
예산군 노인회장에 취임하여 바람직한 노인상을 위하여 노추(老醜 : 추하게 사는 삶), 노궁
(老窮:수중에무일푼으로사는삶)노고(老苦:외롭게사는삶)와같은삶으로 살지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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