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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지 않았고 기묘사화에 많은 현인들이 참화를 입는 것을 보고 모든 것들을 버리고 파평
산 아래로 돌아왔다 우의정을 중직하고 시호를 문정이라 하였으며 파주의 파산 서원에 배향
하였다.
송 서
)? ( ?
1353)
본관은 여산인데 낙랑부원군 분
의 아들이다 고려 충렬왕때에 순성보리익찬공신이 되었
고 삼충대광도첨의정승 판전리사사 상호군의 벼슬을 지내고 치사했다 여량부원군에 봉하여
식읍 삼백호를 내렸고 시호를 정가라 했다
신말주(
자는 자즙
이요 호는 귀래정
이며 본관은 고령이니 고령부원군 암헌
의 아들이다
문과 급제하여 집의를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정축년
(1457 )
년 에 단종을 영월로 유배하자
벼슬에 뜻이 없어 순창에 귀래정을 지어
10
여명의 노인들과 더불어 시를 노래하며 생애를 마
쳤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깨끗한 충절을 칭찬하였고 나라에서는 이조참판을 추증했다 순창
의 화산서원에 배향했다.
신명견(
자는 숙고
요 호는 운포
이며 본관은 평산이니 화당
민일
의 손자이
다 효종때에 학문으로 후릉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신 유
자는 군택
이요 호는 죽당
이며 본관은 고령이니 귀래정
말주
후손이다.
인조때에 진사가 되고 문과 장원급제하여 예문관의 벼슬을 지냈고 영국원종공신에 책록되었
다 효도하고 우매하며 청수하고 문장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병자호란 이듬해인 정축
(1673 )
년 에 세자를 모시고 심양에 들어갔다가 돌아왔고 계미년
(1643 )
년 에는 부사로서 일본
에 다녀왔으며 임진년
(1652 )
년 에는 연경에 다녀왔다 벼슬은 예문관 직제학에 이르렀고 문집
이 남아있다.
신재동(
본관은 평산이며 대사헌 사달
의 증손인데 진사에 급제했다
신 흠
)? (1566 1628)
자은 경숙
이요 호는 상촌
또는 현옹
이라 하고 본관은 평산이니 이간공영
의 손자이다.
선조때에 진사가 되고 문과 급제하여 이조판서 대제학을 거쳐 영의정에 이르렀다 일찍이
아산현감으로 있을때에 혜정을 베풀었으며 시호는 문정이라 하고 인조 묘정에 배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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