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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청양토박이들의생애사!
은 그다지 지식을 갖추지 않은 듯 하지만, 한문은 썩 괜찮았다.
그에게 학습이 된 것은 한문이었다. 교재는 당시에 알려진 백낙
준의 『신천자문』이었다. 갑오개혁을 전후하여 한글 사용은 크게
늘었으나 한자 사용은 여전히 줄지 않았으며, 1945년 8·15 이
후에는 한자폐지론과 한글전용론이 여러 차례 제기되었다. 마
침내 문교부(지금 교육부)는 57년 10월에 1300자를 상용한자로
선정하였다. 『신천자문』은 문교부의 상용한자를 토대로 지어진
천자문책이었다. 양애기 선생님으로부터 천자문을 학습하고 나
서 한문에 대한 관심과 의욕은 자산이 되었고 공무원생활과 현
재 면암서화협회 이사장으로 활동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되었다.
한편 그의 부모님이 농지를 거의 팔게 되면서 어머니는 가
계를 책임지기위해 장사를 하였다. 특히 솜 장사를 하게 되면
서 이익을 보게 되었다. 당시 부모님은 중국인과 동업관계였던
‘손’씨를 양자로 삼았다. 손 씨의 아버지는 예산군 합덕에서 솜
판매 도매상을 하였다. 그의 양자인 손 씨가 청양에서 장사를 하
게 어머니와는 반씩 지분을 갖고 청양에서 솜을 팔았다. 목화에
서 씨를 빼낸 솜은 이불솜과 옷 솜으로 활용되었다. 솜은 보온성
이 뛰어나 누비옷을 만들어 입고 이불을 덮고 겨울을 나는데 꼭
필요한 소재였다. 또한 방석을 만드는데도 꼭 필요하였다. 인조
솜이 아직 없었던 시대에 목화솜은 생활에 꼭 필요한 소재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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