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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우리는 당시 조선?중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조선?중국의 아래적?
아래야는 글귀를 남긴 데 반해, 미국의 쾌걸 조로는 칼자국을 남겼다. 같은 의적이지만, 한쪽은 선비
스타일이고 다른 쪽은 무사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선비문화 혹은 사대부 문화가 지배한 조선?중국과
카우보이 문화가 지배한 미국의 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송나라 때의 아래야 이야기를 조선 스타일로 재해석한 아래적 이야기를 읽다 보면, 당시 사람들이
의적을 얼마나 영웅시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포도청에 붙잡힌 아래적이 탈출에 성공하는 과정을
다루는『어수신화』
의 기법 속에서 그런 정서를 읽을 수 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는 말처럼 아래적도 어쩌다 붙잡히고 말았다. 거물을 체포
하고 한껏 고무된 포도대장은“사형까지 몰고 가겠다”
며 의지를 불태웠다. 아래적도 빠져나가기 위해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했다. 민담집에서는 당연히 의적이 포도
대장을 이기게 되어 있다. 중요한 것은 의적이 얼마나 기막힌
방법으로 포도대장을 이기는가에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어떻게 구성했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자.
아래적은 옥문을 지키는 포졸을 매수했다. 어느 산, 어느
골짜기, 몇 번째 소나무 밑에 300냥을 감춰뒀으니 필요하면
갖다 쓰라고 하면서 포졸의 환심을 산 것이다. 전남 영암 지방의
쌀값 변동을 분석한 어느 논문에 따르면, 1744~1850년에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은 0.4~3.0냥 수준이었다. 이것만 봐도
300냥이 얼마나 큰돈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아래
적을 신뢰하게 된 포졸은 포도청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1996년 홍콩 영화 <아래야>
그에게 귀띔해 주었다. 얼마 후 포졸은‘내일 포도대장이 아래
적을 재판한 뒤 사형에 처할 것’이란
첩보를 입수해서 아래적에게 알려주었다.
그러자 아래적이 청탁을 했다.
“나를 잠깐만
풀어주면 통행금지 해제 전까지 돌아오
겠소.”포졸은 부탁을 거절할 길이 없었다.
아래적은 약속대로 새벽 4시경 돌아
왔다. 그 포졸이 내쉬었을 안도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그날 포도대장의 주관으로
열린 재판에서 아래적은 곤장을 맞고 석방
되었다. 포도대장은 그가 아래적이 아니라
포도청이 있었던 자리
고 결론을 내렸다. 그저 흔한 잡범일 뿐이
(서울시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
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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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eosan.cult21.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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