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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효열정려지
[7] 열녀 김씨 <金氏>
남편 죽자 열흘간 굶고 뒤따라 죽다
조선 후기 영조 때의 열녀다. 남편이 죽자 열흘간을 먹지 않고 굶어서 목숨을 끊었다.
1729년(영조 5)에 신창면 득산리에 정려를 세웠으나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
[8] 열녀 김씨 <金氏>
시어머니, 남편, 자식죽자 약먹고 뒤따르다
조선 후기의 열녀다. 아산시 음봉면에 살았던 김한성(金漢成)의 부인이었다. 남편이 일
찍 사망하여 어려서 홀몸이 되었다. 아버지가 재혼을 시키려고 했으나 죽기를 맹세하고
복종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편의 뒤를 따라 죽으려 하니 시부모가 타이르며 말하기를
“네 남편은 비록 일찍 죽었으나 다행히 아들 하나가 있으니 네가 목숨을 보전하여 어린
아이를 잘 길러 네 남편의 뒤를 계승하도록 하여야 하느니라.”하였다. 그는 이로부터 슬
픈 얼굴을 감추고 시부모를 잘 모시면서 아이를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
아들마저 요절하고 시어머니도 세상을 떴다. 그는 집안일을 손아래 동서에게 전해주고
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다. 그의 이런 열행을 고을의 선비 임거보(林擧寶)가 관청에 보
고했다.
[9] 열녀 김씨 <金氏>
시집가기 전 남편 죽자 약 먹고 목숨 끊다
조선시대의 열녀다. 아산시 영인면에 살았던 최지영(崔志永)의 부인이다. 혼인식은 치
렀지만 아직 시집으로 가기도 전에 남편이 갑자기 죽고 동시에 친정어머니가 세상을 떠
났다. 이에 그의 친정아버지가“네 어머니의 빈소를 지키겠느냐, 아니면 네 남편의 상사
(喪事)에 가겠느냐?”
라고 물었다. 그가 대답하기를“제 남편은 이미 죽어서 사체가 방을
나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지금 시집으로 간다면 저는 시집 사람이 된 것과 같지만 제 남
편의 장례가 끝난 뒤라면 누구를 의지하여 시집을 찾겠습니까?”
하고 곧 그날 저녁에 시
집으로 달려갔다. 남편의 시신을 어루만지며 통곡하고 곧 남편의 뒤를 따라 죽으려 하였
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시아버지를 봉양할 사람이 없게 되므로 눈물을 감추고 지극한
정성으로 시아버지를 모셨다. 이와 같이 5~6개월이 지나고 시아버지의 마음도 점점 안
정되어 가자 마침내 약을 먹고 목숨을 끊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런 사실을 듣고 고을
의 사대부들이 애틋하게 여기며 이구동성으로 포상하여 주기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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