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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입 향
궁골 마을은 인조때부터 순응 안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다고 하며 서기
1500
년경 약
500
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 순응 안씨가 현재 정안리에 와서 보니 산세가 좋지 않아
서 안터로 와서 터를 잡았다고 하며 가장 오래 살고 계시는 분은
12
대째 살고 계시는 안
웅중씨가 계셨다 순응 안씨의
11
대조 할아버지가 안동 김씨를 사위삼아 이 마을로 들어
와서 살기 시작했는데 그 이후부터 김씨 감씨 전씨등도 많이 들어와서 살고 있다
조내골 마을은 김씨와 이씨가 가장 많이 모여 살며 형성년대는 서기
1700
년경 약
300
정도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마을의 전형적인 흙집이 그 오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6)
지 명
궁골 마을의 지명
궁골
궁화리에서 가장 큰 마을
. " "
궁 이나 궝 은 구유의 고어로서 궁골은 구유골이란 뜻
" "
으로 먹은 것이 충분하라는 뜻이 됨 또는 마을이 활처럼 생겼다 하여 궁골이라 유래 됨
국시미
돌팍재 뒤에 있는 마을 뒤에 국수봉의 마을이란 뜻임
. " "
수 가 시 로 변음 되었
" "
돌팍재
안터 위쪽 산등성이에 있는 마을 큰 돌이 많이 있음 돌을 파낸 자리가 있음
안터
중말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장승부리
화산 밑에 있는 마을 마을 앞에 산부리에 장승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
중말
장승부리 서쪽에 있는 마을 장승부리와 안터 중간이 됨으로 붙여진 이름
국수봉
국사봉이 국수봉 국시미로 바뀌었는데 그 국시미 마을 뒷산이 됨
염통산
궁골 남쪽에 있는 고운산 모양이 짐승 염통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
라고도 하고 영통하다는 말이 변하여 염통산이 되었다고도 함
오리봉 월오봉
신당리 앞에 있는 산 모양이 오리처럼 생겼다 함
수우리
조내골 남쪽에 있는 들인데 운수가 좋은 곳이란 뜻임
궁골 방죽
궁골 앞에 있는 방죽으로 지금은 없어졌음
벼락바위
조내골 서쪽에 있는 바위 전에 벼락이 떨어져서 바위가 여러조각으로 되었다
는 전설이 있는 바위.
장승배기
장승부리 청룡쪽에 있는 장승터
청동유물 발굴지
동검 동조 동경등이 발굴되었음 청동기 시대의 유물임
조내골 마을의 지명
신당리
궁골 남쪽에 있는 마을 새 당집을 만들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조내골
화산 남서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조리 같아서 조내골이라는 설이 있고 이곳에
" "
하여 조내골이라 함.
주량치기
신당리 아래에 있는 들 곡식의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다는 표현으로 곡식이
잘 되는 들이란 뜻임.
7)
전 설
효자비에 대한 전설 궁골 마을
순응 안씨의
8
손으로 찍어 직접 먹어본 후 어머니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여 약을 직접지어드렸다고 하고
겨울에 어머니가 잉어가 드시고 싶다고 하셔서 방죽에 가서 무릎을 꿇고 사정을 하였더니
잉어가 올라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효심에 감동하여 효자비가 내려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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