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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청난지비
홍주부사만원선생남양홍공청난비명병서
통훈대부원임홍문관권한지제교겸경연
시강관춘추관현수관조형지음
통훈대부원임형조정랑유시영씀
가선대부원임사헌부대사헌김광현
지난만력 이십사년(1596) 역력 이몽학이 호내에서 군사를 일으켜 여섯 고을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두 명의 고을수령을 포박하여 성세가 원근에 떨쳤었다. 그때에 홍주목사 만전
홍공이 문관으로써 외로운 성을 굳게 지키고 며칠 되지 않아서 도적을 베었으니 선조대왕
이 가상히 여겨 벼슬을 더해주었다. 또 명하여 협아라 쓰게하고 다시 청난공실 호위 이품
을내리고영원군에봉작하였다.
이때 동방의 사대부와 시골농부 아낙네에 이르기까지 공의 이름을 부러워하고 알면서
사모하지 않음이 없었다. 하물며 홍주백성이 친히 공이 굶주린 범의 발톱에서 건져냄을 입
었으니 가까운 사이 아니겠는가. 그 공의 송덕함이 마땅히 끝이 없어야 하나 초상을 그려
봉안한사 당온이 있었다는 소리는 듣지 못하였고 공덕을 사랑하는 기림이 사십 여년이 잠
잠했으니 어찌된 일인가. 가정년간(중국 명나라 연호) 복건안찰사(중국 복건성 안찰사) 종실(중국 명나라
황제 종친) 자상 이험나라 오랑캐가 복건을 유린되어 깨끗이 성문을 열어 도적을 물리쳐 백성
들이 오석산에 사당을 세우니 덕을 노래하여 새겨놓은 현판이 쇠미하여지지 않았다. 지금
홍공이 홍주의 백성을 살린 것이 자상에 비교하여 지나치지만 여기에 미치지 않음이 없다.
난을 평정한 충렬은 자상 과서로 몇이 아닐진데 어찌 홍주만이 오석산처럼 조그마한 자리
와 좋은 희생을 놓는 돌 하나가 부족하단 말인가. 비록 풍속이 거칠어도 또한 마땅하다. 금
년 봄에 완상 이공이 은대의 대언으로 있다가 이고을에 부임하여 드디어 개연히 홍공의 일
을 이 고을 부노와 상의하여 사당과 비석을 갖추어 한양의 조형에게 알리니 원컨대 당신의
말씀을 빌려“만전공의 충절과 덕을 드러내며 보이고자 합니다.”하며 재주 없다고 사양했
으나 어쩔 수 없이 말하니 홍양은 큰 방어지 이니 홍양을 잃게 되면 이것은 호내를 잃는 것
18_홍성의금석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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