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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였다.



김 양식은 1970년대 시작하여 제방을 막으면서 끝났으나 보상을 받지는 못했다. 김양


식장이 정식 허가를 받지 못 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허가를 내려고 하였으나, 좁은 면적

이었고,포구와인접되어있어도저히허가를받을수없었다.
대천수산중학교는감을건너다녔다.
이상환 님은 용머리에 거주하면서 대천 신흑동에 있는 대천수산중학교에 다녔다. 이때
물이 빠지면 죽도를 지나 조잠갱구랑을 건너 갓 배로 그냥 건너다녔다. 아주 가까운 거리
였지만,조잠갱구랑은물에빠져야건널수있었다.이렇게썰물때갯벌을건너는것을‘감
건넌다.’라고하였다.물이들어오면개목-평촌-소뱅이-지석굴-흑포로통하였는데30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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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었다.한달에10여일은돌아다녔다.
죽도에서는나무를팔았다.
죽도에 9가구가 거주했지만, 나무는 충분하였다. 죽도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던 이상환
님의아버지이윤우님은솔가지와솔가루를모아소금굽는사람들에게팔았다.용머리주
민들은먼산나무를했지만,죽도주민들은먼산나무를하지않았다.
용머리나죽도주민들은웅천장을주로보았다.
옛날에는 웅천장이 컸고, 용머리나 죽도에서 가까웠다. 웅천 장에 가기 위해서는 대개
월전리댈월-웅천죽청리진등-웅천구룡리고뿌래-웅천대천리구장터를거쳤다.지름길
은양기리터굴-할미재-웅천구룡리고뿌래-웅천대천리구장터를통하는길인데고개가
높아잘다니지않았다.
대천장도보았으나웅천장보다멀어어쩌다다녔다.
월전리 용머리 마을에서는 설날 하루 종일 세배를 다녔고, 정월보름날에는 월계(댈월) 사람
들과쥐불싸움을하였다.
남포면월전리용머리마을은100여호가모두경주이씨집성촌이었다.모두가일가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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