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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전리용머리마을에는1950년대에교회가생겼다.

남,
남포면월전리용머리마을에서제일먼저교회에다닌사람은서산할머니라고불린,이

상옥씨 할머니였다. 어디로 다녔는지는 모르고, 교회에 다녔다는 이야기만 있다. 이후 월



전초등학교에 유한정 선생님이 부임하여 기독교를 전도하였다. 그는 목사도 아니고 전도


사도 아니었지만 주민들과 학생들을 상대로 열심히 전교하였다. 당시 교회에 적극적이었


던분이이상옥씨의동생이상익씨였다.그는자기집의벽을털어교회로개조하여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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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보도록하였다.이교회가현재용머리의아랫교회이다.신도는극소수이지만이상익씨
의유언으로유지되고있다.
월전초등학교가옮겨진후,옛학교자리에들어선교회가윗교회이다.용머리주민들은
대부분윗교회를다니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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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주민들은용머리주민들과대동계를함께하였다.
남포면월전리는2개의행정리로분리되었다.댈월과대자울이월전1리,용머리와죽도
가 월전2리로 분리되었다. 죽도 주민들은 용머리 마을과 같은 이장 관할 하에 있어 대동
계를함께하고상여도함께사용하였다.그러나상포계같은것은개인적으로친분따라
들었지 마을 주민들 모두가 들지는 않았다. 쇳들 마을도 일부 월전2리에 속하나, 속하기
만할뿐양항리쇳들마을주민들과어울려생활한다.상엿집은용머리마을북쪽고궁가
든자리에있었다.
죽도에서는섬동쪽마을앞에김발을맸다.
죽도마을에서는섬동쪽,마을앞,현재배대는곳에서김양식을하였다.신두레쪽에
서도양식을시도하였으나,파도가심하고깊어양식할수없었다.좁은공간이어서4집이
양식에 참여하였고, 가장 많이 맨 주민이 이상환 씨였다. 10떼를 매어 하루에 10톳(1동)
정도를생산하였다.
김포자는현장에서붙였고,파도가세어품질이아주좋았다.없어서못팔정도였다.그
러나인공포자를붙인뒤에는품질이예전같지않았다.
죽도에서는 돌김도 생산되었는데, 양이 적어 상품으로 팔지는 못 하고 집에서 먹는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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