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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도에는 논은 없고 밭농사만 지었다. 밭에는 보리를 주로 심고, 조 수수 등을 심었는
데 부자라고 해야 보리 7~8가마를 생산하였다. 김성용 집안은 밭이 없어 주인 없는 땅
에 보리를 심어 2가마도 안 되는 보리를 수확하였다. 녹도에는 1950년 무렵 고구마가
들어왔다. 예전에는 보리의 뒷그루로 조를 심었는데, 고구마를 심고서부터 배고픔을 면
할 수 있었다. 녹도에서는 모시를 심지도 않고, 길쌈을 하지도 않는데 자연적으로 모시
가자라고있다.현재도무성하게자란다.그는옛날에생활이어려워한때 이모시를베
어다가껍질을벗겨태모시로팔기도하였다.
독도에서 농사지을 때 거름으로 사용한 것은 잿간변소에서 나온 재와 버무려진 인분
과 생선의 대가리였다. 녹도에는 생선이 흔하기 때문에 생선대가리를 재와 버무려 말려
두었다가밭에거름으로주었다.흔한복쟁이대가리가거름으로많이쓰였다.
녹도에서는 초분을 많이 하였다. 초분은 바닷가에 만드는데 먼저 흙을 좀 높여 쌓고,
돌을 깐 다음에 대나무발로 싼 시신을 올려놓고, 양쪽에 말뚝 2개를 박아 이엉으로 둘
러 물이 들어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때 시신은 육지에서와 같이 수의를 다 입힌다. 이
러저런 이유로 녹도의 동남쪽 해안에는 초분이 많았었는데 행정기관에서 위생상 좋지
않다고 매장을 종용하였고, 주민들도 힘을 합해서 모두 매장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
와서는초분이없어졌다.
옛날 주벅으로 조기를 많이 잡을 때는 녹도에 돈이 많았고, 많은 화적떼들이 들어왔
다. 이를 막기 위해 군인의병 4명이 들어왔다. 이 의병들이 화사리 너머에 다니는 무역
선에서 벼를 빼앗았고, 이 이야기를 들은 일본 경찰이 녹도에 들어와 수색을 하게 되었
다. 의병들은 숨었으나 산에서 탄피를 발견한 일본 경찰은 다음날 수색하기로 하고, 포
구 밖에 배를 정박시키고 잠을 잤다. 이때 높새바람이 불어 일본 경찰이 탄 배가 포구
안으로 들어왔고, 의병들은 이 기회를 잡아 일본 경찰을 모두 죽였다. 이 사실을 전해들
은 군산의 일본군과 경찰이 녹도로 들어와 녹도를 모두 불태웠다. 그때 몇 사람이 호도
로 건너갔고, 호도 당산에 숨었다가 일본군들이 당산에 불을 지르자, 아래에 있는 집에
뛰어들어 바느질하는 아주머니의 치마폭 속으로 들어가 살아남았다 한다. 그렇게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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