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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고, 제물은 돼지머리, 떡, 삼색실과, 술 등이었다. 이상환님 아버지(1904년생) 세대에서



지냈다.당에뱃기가올라가지는않았다.



죽도에처음들어온주민은남포면제석리에살던정행봉씨아버지였고,이후여러사람들이
들어와9가구가거주하였다.녹도에서여러분들이들어왔고,대부분수운교를믿었다.
정행봉씨아버지는독실한수운교신자로죽도에들어와기도하면서생활했다고한다.
이후죽도에주민들이들어왔는데,녹도에서박병순,전남식,박창국씨가들어오고,정행
봉씨가남포제석리에서,오상근씨는서산해미에서,김승연씨는부여에서,이윤우씨는
이웃용머리에서,추운식씨는웅천수부리에서들어왔다.
죽도에살던주민들은대부분수운교를믿었다.수운교의대표격이었던사람은박병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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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였고도호는교호장이었다.교당은없었고다만도호가연호자인분이일년에2~3차례
찾아와모임을가졌다.이상환님도수운교에입교하였는데도호는대호자(大虎子)였다.
죽도에거주했던주민들간에인척관계는없었다.아들들이분가한2가구뿐이었다.
죽도에는샘이2개있었다.
죽도에는 샘이 2개 있었다. 큰 샘은 섬의 동쪽, 마을 앞, 해안에 있어 큰사리 때 바람이
불면바닷물에잠기기도하였다.물이좋아오래두어도변하지않았고수량도많아생활
하기불편이없었다.이기환님이이주한1950년대까지는그냥웅덩이여서,장마철에는바
가지로,수위가내려가면두레박으로퍼먹었다.이후시멘트로만들어두레박으로퍼먹었
다.김양식을할때는물이대량으로필요하여부족하기도하였다.
또하나는서남쪽해안에있었는데1집에서만먹었다.
죽도의방파제는대산건설에서처음으로만들었다.
죽도의원주민들이사용하는작은방파제는몬돌이라고불렸는데,작고파도를막는데
역부족이었다.현재와같은방파제겸물양장이만들어진것은남포간척지제방공사때문
이다.당시대산건설에서바지선에돌을싣기위해만들었으나,공사계획이변경되어바지
선을사용하지않고,만들어진제방으로돌을운반하여공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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