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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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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가 아버지의 유골을 명당이라고 소문난 11대조 묘에 투장하여 발복하고자 하여 일
어난일로,밤중에11대조봉분바로뒤의떼를감쪽같이파내고,흙은홑이불을깔고파놓
고,유골을묻은후,감쪽같이복원해놓았다.그러나밤에한일이라어떤실수가있을것을
염려하여다음날새벽에묘지에와서살피던중,묘지바로아래에살던산지기한테발각되
었다. 산지기가 새벽, 변소에 가기 위해 나왔다가 묘지에 있는 사람을 보고 쫓아갔으나 형
제는도망갔고,묘지를살펴보니간밤에투장한것이라금방표시가났다.
이에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고, 어떻게 잡았는지 형제를 잡아, 자기들 손으로 유골을 파
가게하였고,집안과마을에서내쫓아버렸다.
후에이들은증산리시루뫼마을에들어와산지기로살았다고한다.
돌고개에사는박주사집에서는전담지관(地官)을두었다
돌고개에 사는 부호인 박주사는 전담 지관을 모셔왔다. 충청북도에서 모셔왔는데 이동
영씨였다.지관에게는집을지어주고논20여마지기를주었다.
1950년무렵,시루뫼마을에서는실제결혼식같은사혼을하였다
1950년무렵이풍호씨의누님벌되는사람이20여세에죽었다.몸이아파큰정
을읽었
1)
으나 사망하였다. 이때 웅천 소황리에 거주하는 최씨 집안에서 총각으로 죽은 사람이 있어
혼인하기로 하였다. 먼저 웅천 소황리 최씨 집안에서 시신을 발굴하여 상여로 신부집인 증
산리 시루뫼로 가져와 하룻밤을 지낸 후, 다음날 혼례식을 하였다. 관을 양쪽에 놓고 가운
데에는 초롓상을 차리고, 닭을 양쪽에 들고 있는 등 실제 혼례와 똑같이 하고, 술잔도 똑같
이주고받았다.
이렇게혼례를치른후,두개의상여로신랑집인웅천소황리로운구되어장례를치렀다.
1)대규모로하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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