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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명령에의하여전원석방되었다.
2차 홍주의병은 그로부터10년 뒤,이
남규 댁(대술현곡)에서 모의하고 1906
년에 일어났다. 1차 홍주의병을 일으켰
던 안병찬, 채광묵, 박창로, 이세영 등이
을사늑약의소식을듣고을미사변후관
직을 떠나 은거하던 전 참판 민종식을
찾아가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봉기했다.
봉기 출정 장소가 지금의 광시면사무소
광장이었다.
홍주성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관군의 저항으로 홍주성은 쉽게 함락되
병오홍주의병출진기념비(사진:곽상규)
지도 않았다.신무기로 무장한일본군은
힘겨운 상대였다.의병은 관군의저항을 뚫고 드디어5월19일 홍주성을 점
령하기에이르렀다.
그러나 2차 의병은 양민을 포함한 수백명의사상자를 냈다.단일전투로
최대의희생자가 생긴전투였다.하지만 의병들은이에굴하지않았다.그리
고 이 의병 투쟁은 전국 곳곳에 의병 봉기의 도화선이 되었고 1910년 독립
전쟁과3·1운동으로까지이어졌다는점으로실로역사적의미가크다.
홍주의병으로 순직한 유생,의병대들이 순직하여 충혼이서린 9백여명이
잠든의사총이필자가참배할때에한여름푸르름속에말없이잠겨있었다.
그러나나라의정의와평등이정말로이루어지고있는가묻는것같았다.
제4부대흥에오면대흥한다 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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