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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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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곡리동실의99칸기와집은이민우씨가지었다
주산면삼곡리동실에있는99칸기와집은이민우씨가지었다.이민우씨는보기드문미
남자여서 음식 값을 받지 않을 정도였다고 전한다. 이민우 씨는 일제강점기 재판소의 서기
를 해서 돈을 벌어, 도지로 땅콩을 100여 가마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해방 후에는 일본
인이 가지고 있던 서천군 서면에 있는 간척지도 소유하였다. 그런 돈으로 99칸 기와집을 지
었다.
삼곡리동실99칸집을지을때두사람이죽었다
삼곡리동실99칸집을지을때두사람이죽었다.하나는일꾼이었다.집에올릴큰대들
보를 웅천 정창호 씨가 운영하는 제제소에 가져가서 켜 오려고, 지고 가다가 사망하였다.
무거운 짐을 지고 미끄러져, 짐으로 진 나무토막(대들보)에 깔려 사망한 것이다. 또 한 사람
은 주인인 이민우 씨의 부인이었다. 하루 종일 누에고치에서 명주실을 뽑았는데 불 피운 밤
나무의가스중독으로사망하였다.좋은집을짓는데두사람이죽었다는소문이있었다.
삼곡리동실99칸집에는
6.25때인민군본부가있었고, 황률리에는보급창고가있었다
삼곡리 동실 99칸 집에는 6.25때 인민군 본부가 있었다. 큰 규모의 새 집이기 때문에 본
부가들어선것이다.
반면 주산면 황률리 밤나무굴에는 인민군들의 보급 창고가 있었다. 이곳에는 솥공장이
있었고 큰 창고가 있었는데, 이 창고를 보급창고로 사용한 것이다. 인민군이 후퇴한 후, 보
급창고에는많은군수물자들이가득있었다.무기류는군(軍)에서가져가고,민간에서사용
할 수 있는 솥, 된장, 굴비같은 것은 입찰하여 주민에게 불하되었다. 박난규 씨와 이종성 씨
가불하받아처분하였다.
6.25당시노천리김씨는장자울상엿집에숨었다가살해되었다
웅천읍노천리에살던김씨는기술자였다.해방후에시루뫼마을에서많은액비통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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