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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다.
영조때에 참봉에 천거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진사를 거쳐 문과에 장원급제 하였고 삼사
의 벼슬을 거쳐 판서에 이르렀으며 청백리로 유명했다
김 합
자는 회지
요 본관은 김해이며 충간공 보
( ))
에 손자로서 벼슬은 사재감정
을 지냈다 뜻과 행실이 맑고 높아서 벼슬에 나아가기를 좋아하지 않고 자연속에 묻혀 덕을
기르기 위해 아산당 죽동
에 은거했다 태종때에 좌찬성을 중직했다
김행도(
金 濤
고려 태조때에 아주제군사가 되어 아산 지방을 다스린 청백리이다
김 현
자는 왕이
요 본관은 김해이며 충간공
簡公
의 후손인데 효우
가 출전
했다 병자호란
(1636 )
녀 에 병든 아버지를 업고 수원지 지금의 인주면 걸매리 까지 피난을 왔다
가 적군을 만났다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므로 자신의 몸으로 아버지 몸을 감싸 안고 칼에 맞
아 죽었으며 아버지는 목숨을 구했다
경학에 대한 조예가 깊었으나 끝내 과거에 응시하지 않고 처사로서 깨끗한 선비의 지조를
지켰다 숙종때에 정려를 명하여 음봉면 송촌리에 정문을 세웠으며 전재 임원회가 정려기를
지었다.
김현성(
)? (1542 1621)
자는 여경
이요 호는 남창
이며 본관은 김해이다
명종
19 (1564 )
년 에 문과 급제하여 동지돈녕부사를 지냈다 시를 잘하고 필법은 조송설
체를 따랐다
김홍욱(
)? (1602 1654)
자는 문숙
이요 호는 학주
이며 본관은 경주이니 단구자
丹邱
의 아들이
인조때에 생원 진사에 합격했으나 그 방은 파하였으므로 다시 진사에 합격하여 문과에 급제
했으며 한림이 되었다 병자호란
(1636 )
년 에 척화를 주장했으며 삼사와 이조정랑 응교 사인
등의 벼슬을 거쳐 당진의 수령이 되었고
호서의 안찰을 하여 대동법을 창설했다
갑오년
(1654 )
년 에 황해도 관찰사로서 강빈의 원옥사건을 구하기 위한 상소를 올렸다가 효종의 미움
을 받아 서울로 잡혀와 국문을 받다가 졸하였다.
송시열과 송준길이 건의하여 관직이 회복되고 이조판서를 추증하여 시로를 문정이라 했다
문집이 있고 성암서원에 배향되었으며 지재
민진후가 행장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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