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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수덕여관〉에서이런일이
-나혜석과고암이응노,그리고화가의집
한국최초의여성서양화가나혜석이1939년즈음아픔을딛고인생의전
환점을 마련하고자 출가를 계획, 수덕사를 방문하였다. 나혜석은 김일엽의
소개로수덕사조실만공스님을접견했지만무슨이유인지거절당하고말았
다.이에나혜석은수덕사발치에있는〈수덕여관〉에서지냈다.
그는이혼에따른 상처를치유하려는일종의도피처로서〈수덕여관〉을선
택,자리를 잡고 창작활동에매진하였다.아울러근대여성으로서,해외에서
그림을전공한 큰예술가로서의명성을 듣고찾아온사람 중에고암이응로
가 있었다. 고암은 나혜석이〈수덕여관〉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않아 마침내
그곳을매입하기에이르렀다.
나혜석은 방황하며 안정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은 영양실조 속에서 비참
한 생애의 막을 내렸다. 나혜석의 미술사적 위치는 천부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나혜석은 고암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미술사는 밝히
고 있다. 이 두 사람 외에 김일엽과 작가 김명순까지 이 〈수덕여관〉을 드나
들었으니,한국근대예술의요람이아닐수가없다.
고암 이응로는 예산 낙상회 출생으로 그의 조카 이희철 아동문학가와 이
웃에살았다.이런사실이어찌된일인지고암은홍성중계리사람이라고주
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 사람이 되어 동서양 미술을 접
합하여 세계적인 미술가로 정립된 분이다. 〈수덕여관〉이 명소가 된 것은 건
물의미학보다는훌륭한예술인이생활하던〈작가의집〉이었다는사실때문
이아닐까.
172 근대예산풍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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