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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유
)? (1571 1648)
자는 관옥
이요 호는 북저
이며 본관은 순천이니 장의공
여물
의 아
들이다 인조때에 정사영국 일등 공신에 책록되었고 승평부원군에 봉하여 영의정에 이르렀으
며 시호를 문충이라 했다 인조의 묘정에 배향하고 부조묘를 명했다
김 윤
자는 윤옥
이요 본관은 김해이며 충간공
簡公
의 후손이다 유일
의 손자로서 세조때에 무과 급제하여 경력
의 벼슬에 올랐다
지혜와 용기가 뛰어났고 세조의 시종으로 공로가 있어 크게 발탁하여 등용하였으나 얼마되
지 않아 졸하였다 나라에서 관원을 보내에 처제히고 병조판서를 추증했다
김익생(
자는 정부
요 호는 성재
이며 본관은 김해이니 질
의 아들이다 태종대에 경주
부윤이 되어 빈현루를 지어 강무소로 삼았는데 안평대군 용이 액자를 쓰고 정인지가기를 지
었다 치적이 훌륭했고 벼슬은 예조판서를 지냈다
태종때에 효행으로 효자 정려를 명하여 도고면 도산리에 정문을 세웠다
김 종
자는 여종
이요 본관은 김해이며 공신 윤
의 후손이다
명종때에 진사에 급제하였고 효행이 특히 뛰어났으므로 천거를 받아 효릉 참봉을 제수했다
김종학(
자는 학경
이요 호는 죽헌
본관은 김해이니 충간공 보
의 후손이다 문장이
아름답고 덕행이 순수하였으나 덕을 숨기어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시골에서 노부모를 봉양하
며 후학들을 권장하여 온 마을의 추앙을 받았다 유집이 있다
김 질
자는 국상
이요 호는 송암
이며 본관은 김해이니 금녕군
金寧君
시흥
의 후
손이다.
고려조에 소부소감 벼슬을 했고 조선 태조가 건국 초기에 과거의 정의를 생각해서 원종공
신으로 책록하고 예조판서의 벼슬을 주어 여러 차례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고 고향의 산
속에 숨어서 충절을 온전히 지키며 일생을 마쳤다.
묘는 도고면 도산리 유좌에 있다 태조때에 윤음으로 도고산 일대를 사패하고 예장을 명하
였던 곳이다 비갈이 있다
김한로(
자는 양지
요 호는 죽포헌
이며 본관은 경주이니 학주
홍욱
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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