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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 충남,잊혀진시간을말하다4
이철원선생은어렸을때신동이라는소문이있었다
이철원 선생은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았다. 아버지인 이승규 씨가 다섯 살도 되기 전에
해와달을그려서가르쳤는데아주잘했다고전한다.
3.1만세운동때고향사람들이고생을하였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 이철원 선생이 서울 배재학당에 다녔다. 서울에서 내려와 고향
에 있는 분들한테 여기서도 만세를 불러야 할 게 아니냐고 하여, 만세를 불렀다. 만세를 부
른 날 새벽 이철원 선생은 도망가고, 마을 사람들만 잡혀 많은 고생을 하였다. 특히 고모부
인 윤용원 선생은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윤용원 선생의 부인은 이승규님의 동생으
로,구학문도많이배운분이었다.
이철원선생의부인은오하남(吳下男)님이었고딸둘을낳았다
이철원 선생의 부인은 오하남 이다. 청주 분이었고, 1919년 3.1 만세운동 직전에 큰 딸을
낳았다. 이후 이철원 선생이 미국에서 돌아왔을 때, 작은 딸을 낳았다. 그녀는 남편의 고향
인시루뫼마을에살면서,두레할때밥을해주는등마을일에앞장서기도하였다.많은바
가지를 생산하여 두레에 나온 마을사람들에게 밥을 해 주었다. 마을 사람들과 함께 바가
지에국과밥을담고단무지를얹어주었다.
자금을대어간척사업을하는등상당한재력가였고딸들도잘가르쳐큰딸은교편을잡
았다.말년에는양자를들이고,주산면유곡리에거주하다가사망하였다.
구촌이덕온선생이쓴영보정현판은기와집아래채대청마루에걸어놓았었다
증산리 시루뫼마을 전주 이씨 입향조인 구촌 이덕온 선생은 글을 지어 충청수영 영보정
에 현판으로 걸어놓았었다. 이 현판은 한말 영보정이 헐릴 때, 후손들이 떼어다가 기와집에
두었다.
기와집에서는 이 현판을 아래채 대청마루에 걸어 놓았고, 글을 아는 선비들이 오면 손으
로짚어가면서읽고해석하였다.최근아래채도헐리고,현판도분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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