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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주의열강의침략에굳세게싸울것과그들의문호개방요구를받아들이
지않을것임을강조했다.
병인양요에서표출되었던쇄국양이정책은1868년오페르트의남연군분묘
도굴사건南延君墳墓盜掘事件으로더욱강화되었고,1871년신미양요辛未洋擾에서미국
의침략을물리친후한층더강화되어그내용을비석에새겼는데이것이척
화비이다.
척화비에는‘서양오랑캐가침범하는데싸우지아니하면화친하는것이
고,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洋夷侵犯非戰則和主和賣國’라는 글이
새겨져있다.그리고덧붙여서‘우리만년자손에게경계한다.병인년에짓
고신미년에세운다戒我萬年子孫.丙寅作辛未立’는강한어투의경고문을적고있다.
충남홍성군구항면오봉리산141에위치하고있는이척화비는충남문
화재자료제163호로,화강암으로되어있으며,귀부龜趺와이수 首를갖추지
않은 통비通碑로서 넓적한 자연암석 위에 비몸을 꽂아놓은 모습이다. 서울
의종로네거리를비롯하여전국의주요도시에세워졌는데,비석의높이와
모양은서로약간의차이가있으나높이는120~180㎝,넓이는40~45㎝,
그리고두께는25㎝로대체로비슷하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 대원군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납치되면서 일
제에 의해 대부분 철거되거나 훼손되었으나, 충남 지방에는 신창척화비(아
산시신창면읍내리297.충남문화재자료제236호)와예산척화비(예산군대흥면)등3기가남아
있어급변하던구한말당시의상황과쇄국의의지를잘보여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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