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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바위가 있고, 이것을 열녀암(烈女岩, 열녀바위)라고 한다.
이곳은 옛날 신라시대에 신동지(申東支)라는 대대로 부유하게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 집은 지금의 기와집이 있는 곳이라고 하고, 뒷산
은 바위산으로 단단했고 바위 끝은 길게 뻗어서 맞은 산과 연속하며,
개울도 없고 물의 흐름도 없고 논밭도 없고 바위 동쪽 위에 큰 호수
가 물을 채우고 있었다. 바위는 기름지고 늠름하며 절벽을 형성해서
푸른 하늘과 서로 비추었다. 호수는 사계절 중에도 봄의 신록과 가을
의 단풍이 거울같이 비쳤다. 그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정도
여서 풍광명미(風光明媚)로 소적벽(小赤壁)
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8)
이때 신(申)이라는 자의 집에서 호반(湖畔)의 바위 위에 정자를 짓
고 흥학(興學)을 다했다. 하루는 그 젊은 남편이 학업(學業)한 후에
호반(湖畔)을 산책하는데 바람이 불어 쓰던 관이 바람에 날아가 호수
에 떨어졌다. 젊은 남편은 그것을 집으려고 호숫가에 다가갔다가 발
이 걸려 호수 속으로 떨어지고, 가련하게도 꽃 같은 젊은 남편은 익
사하여 불귀의 호수 신이 됐다. 그 젊은 부인은 ‘부필종부(婦必從夫)’
라고 말하고 죽은 남편을 그리워하다 호수에 투신, 순사했다. 이때부
터 이 바위를 열녀바위라고 했다.
그 부모는 일시에 아들과 며느리를 잃고 슬퍼하고 있을 때 어느
승려가 와서 말하기를 “이 집은 바위와 호수 때문에 불길(不吉)하다.
이것을 절개(切開)하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슬픈
나머지 신옹(申翁)은 당장 하인을 보내 건너편 산까지 뻗어 있는 커
다란 바위를 절단해 버렸다. 호수는 下上가 되어 순식간에 말라 버렸
8) 문헌(文獻)에 ‘고산(孤山)’은 하유단애장호하야 칭 소적벽(下有斷崖長湖
稱 小赤壁)
170 예산군지(19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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