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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암 김구와 덕잠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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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宏綱大用)이 다 ?소학?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소학?의 공효를
16)
짐작하게 하는 평이다.
?소학?의위상은김굉필이그책으로학자들을교육함으로써닦아
놓은 것이다. ?소학?은 도덕적 지상주의로 가는 첫 관문이라 할 수
있다. 김굉필의?소학? 표장(表章)은조선도학의남상(濫觴)을이루었
다. 그리고16세기중반사림파집권이후에는강하(江河)를이루었다.
또17~18세기에는 대양(大洋)의형세를 연출한 감이있었다. 조선유
학사에서 김굉필의 위상은 이로부터 접근해야 할 것이다.
김굉필은 ‘경(敬)’을 통해 ?소학?의 가르침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보
았다. ‘경’이라는수양방법을통해마음을다스리는것은조선성리학
의 요체다. 김굉필은조선의유학을‘심학(心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김굉필 이전에는 심학의 모습을 제대로 선보인 학자가 없었다. 명종
· 선조 시기 이후로 조선의 유학은 심학으로 정초되어 갔다. 17세기
중엽 이후에는 ‘경’을 중심으로 한 심학 체계가 공고하게 구축되었
다.
17)
김굉필의문인과그들이양성한학인들은16세기중반이후, 조선의
학계· 정계를이끌었다. 이들은선조즉위이후사림파(士林派) 집권의
주인공들이었다. 조선을도덕적이상국가로승화시키고‘사림의나라’
로 만든 그 기초는 사실상 김굉필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16) ?重菴集? 권9, 18b, ?答梁?川? “暄翁旣受此書, 直是脚踏實地, 三十猶自稱小
學童子, 故其學最爲有本. 一傳而得靜庵先生, 至今儒者, 當皓天不復洋胡大揚
之日, 猶得依?葫蘆, 爲强此艱彼之地者, 皆祖於暄翁矣. 又如石室先生讀小學
至五百遍, 不翅泥醬爛熟. 是故, 不但文章大達, 其立心律己, 居家處世, 宏綱大
用, 皆從小學中出來.”
17) 이상은 최영성, ?한국유학사에서의 김굉필의 위상?, ?한국철학논집? 41, 한
국철학연구회, 201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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