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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상사에주는물품)을모두우대하는법으로썼다.아는이나모르는이가모두말하기를,
3)
‘어진도위가죽었다.’고하였다.”시호를정효(貞孝)라하였다.
임금이화순옹주방(和順翁主房)에거둥하였다.임금이말하기를,“화순옹주는월성위(月城尉)
가죽은뒤로부터7일동안곡기를끊었다고하니,음식을권하지않고좌시하면,어찌아비된도
리라하겠는가?”하고,곧거둥하였다(『영조실록』권91,영조34년(1758)1월8일).
화순옹주가졸(卒)하였다.옹주는바로임금의첫째딸인데효장세자(孝章世子)의동복누이동
생[同母妹]이다.월성위(月城尉)김한신(金漢藎)에게시집가서비로소궐문을나갔는데,심히부도
(婦道)를가졌고정숙(貞淑)하고유순함을겸비(兼備)하였다.평소에검약(儉約)을숭상하여복식
(服飾)에 화려하고 사치함을 쓰지 않았으며, 도위(都尉)와 더불어 서로 경계하고 힘써서 항상 깨
끗하고삼감으로써몸을가지니,사람들이이르기를,‘어진도위와착한옹주가아름다움을짝할
만하다.’고하였는데,도위가졸하자,옹주가따라서죽기를결심하고,한모금의물도입에넣지
아니하였다.임금이이를듣고,그집에친히거둥하여미음을들라고권하자,옹주가명령을받
들어 한 번 마셨다가 곧 토하니, 임금이 그 뜻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는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돌아왔는데,이에이르러음식을끊은지14일이되어마침내자진(自盡)하였다.정렬(貞烈)하다.
그 절조(節操)여! 이는 천고(千古)의 왕희(王姬) 중에 있지 아니한 바이다. 조정에 받들어 위로하
고정후(庭候)하였다.
사신(史臣)은말한다.“부인(婦人)의도(道)는정(貞)하나일뿐이다.세상에붕성지통(崩城之痛,
남편이죽은애통)을당한자가누구나목숨을끊어따라가서그소원을이루려고하지아니하겠
는가마는,죽고사는것이또한큰지라,하루아침에목숨을결단하여집에돌아가는것처럼보는
이는대개적다.그러나정부(貞婦)·열녀(烈女)가마음의상처가크고슬픔이심한즈음을당하여,
그자리에서자인(自引,자살)하는것은혹시쉽게할수있지만,어찌열흘이지나도록음식을끊
고한번죽음을맹세하여마침내능히성취하였으니,그절조가옹주와같은이가있겠는가?이
때를당하여비록군부(君父)의엄하고친함으로서도능히감동해돌이킬수없었으니,진실로순
수하고 굳세며, 지극히 바른 기개(氣槪)가 분육(賁育,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勇士)이라도 그 뜻을
빼앗지못할바가있지아니하면능히이와같겠는가?이는진실로여항(閭巷)의필부(匹婦)도어
려운바인데,이제왕실의귀주(貴主)에게서보게되니더욱우뚝하지아니한가?아!지극한행실
과순수한덕은진실로우리성후(聖后)께서전수(傳授)하신심법(心法)이므로,귀주가평일에귀
에젖고눈에밴것을또한남편에게옮겼던것이다.아!정렬하도다.아!아름답도다.”(영조실록』
권91,영조34년(1758)1월17일).
4.추사출생설화
3)『영조실록』권91,영조34년(1758)1월4일)『영조실록』;『정조실록』;
『承政院日記』영조34년3월27일;『璿源系譜紀略』
2016 50호 17
3)
‘어진도위가죽었다.’고하였다.”시호를정효(貞孝)라하였다.
임금이화순옹주방(和順翁主房)에거둥하였다.임금이말하기를,“화순옹주는월성위(月城尉)
가죽은뒤로부터7일동안곡기를끊었다고하니,음식을권하지않고좌시하면,어찌아비된도
리라하겠는가?”하고,곧거둥하였다(『영조실록』권91,영조34년(1758)1월8일).
화순옹주가졸(卒)하였다.옹주는바로임금의첫째딸인데효장세자(孝章世子)의동복누이동
생[同母妹]이다.월성위(月城尉)김한신(金漢藎)에게시집가서비로소궐문을나갔는데,심히부도
(婦道)를가졌고정숙(貞淑)하고유순함을겸비(兼備)하였다.평소에검약(儉約)을숭상하여복식
(服飾)에 화려하고 사치함을 쓰지 않았으며, 도위(都尉)와 더불어 서로 경계하고 힘써서 항상 깨
끗하고삼감으로써몸을가지니,사람들이이르기를,‘어진도위와착한옹주가아름다움을짝할
만하다.’고하였는데,도위가졸하자,옹주가따라서죽기를결심하고,한모금의물도입에넣지
아니하였다.임금이이를듣고,그집에친히거둥하여미음을들라고권하자,옹주가명령을받
들어 한 번 마셨다가 곧 토하니, 임금이 그 뜻을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는 슬퍼하고 탄식하면서
돌아왔는데,이에이르러음식을끊은지14일이되어마침내자진(自盡)하였다.정렬(貞烈)하다.
그 절조(節操)여! 이는 천고(千古)의 왕희(王姬) 중에 있지 아니한 바이다. 조정에 받들어 위로하
고정후(庭候)하였다.
사신(史臣)은말한다.“부인(婦人)의도(道)는정(貞)하나일뿐이다.세상에붕성지통(崩城之痛,
남편이죽은애통)을당한자가누구나목숨을끊어따라가서그소원을이루려고하지아니하겠
는가마는,죽고사는것이또한큰지라,하루아침에목숨을결단하여집에돌아가는것처럼보는
이는대개적다.그러나정부(貞婦)·열녀(烈女)가마음의상처가크고슬픔이심한즈음을당하여,
그자리에서자인(自引,자살)하는것은혹시쉽게할수있지만,어찌열흘이지나도록음식을끊
고한번죽음을맹세하여마침내능히성취하였으니,그절조가옹주와같은이가있겠는가?이
때를당하여비록군부(君父)의엄하고친함으로서도능히감동해돌이킬수없었으니,진실로순
수하고 굳세며, 지극히 바른 기개(氣槪)가 분육(賁育,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勇士)이라도 그 뜻을
빼앗지못할바가있지아니하면능히이와같겠는가?이는진실로여항(閭巷)의필부(匹婦)도어
려운바인데,이제왕실의귀주(貴主)에게서보게되니더욱우뚝하지아니한가?아!지극한행실
과순수한덕은진실로우리성후(聖后)께서전수(傳授)하신심법(心法)이므로,귀주가평일에귀
에젖고눈에밴것을또한남편에게옮겼던것이다.아!정렬하도다.아!아름답도다.”(영조실록』
권91,영조34년(1758)1월17일).
4.추사출생설화
3)『영조실록』권91,영조34년(1758)1월4일)『영조실록』;『정조실록』;
『承政院日記』영조34년3월27일;『璿源系譜紀略』
2016 50호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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