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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과 소리판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산군의 중앙부는 무한천?삽교천 등 2개 하천이 북으로 흐르며 들에 물을 제공
하여 그 유역에는 기름진 예당평야가 펼쳐져 쌀의 주산지를 이룬다. 일제 강점기에
예당저수지
공사를 시작하여 막기 시작한 것이 타 고장의 저수지 축조보다 상대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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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른 시기이다. 예당저수지로 인하여 천수답에서 일찍 벗어나게 되면서 농업 생산
양이 안정적으로 자리 잡게 되는데, 이로 인하여 예산 특유의 넉넉한 혹은 여유로운
정서가 형성 된 것으로 추정된다. 예당저수지가 완성 된 이후 지역의 가뭄 때에는 예
산 군수가 예당저수지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했다. 이는 예당저수지에 대한 예산 사
람들의 인식을 읽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민속의 입장에서 주목할 만하다.
예산의 기후는 각종 기록에서 살피면 기후 또한 평온한 고장으로 보인다. 해안에서
그리 멀지 않으면서도 바다의 영향은 비교적 적어 내륙성 기후에 가깝다. 기온 교차
가 심하고, 여름철의 남동풍과 겨울철의 북서풍이 탁월한 온대계절풍 지대이면서, 여
름이 덥고 겨울이 추운 대륙성기후이기에 사계절이 분명하다. 사계절이 분명한 것은
전통 영농에 적합한 고장이요 과일이 잘 자라 제 맛을 내는 고장이라는 의미한다. 4
계절이 뚜렷하여 겨울에는 차령산맥으로 인해 눈이 많이 내려 보리와 밀농사가 잘 되
면서도 해풍의 영향으로 겨울에는 엄동 추위가 드물었다.
결론적으로 예산의 산과 들, 즉 지형과 지리는 욕심 없는 사람들이 서로 어우러져
편안히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고, 그동안 필자가 예산 민속을 조사하며 예산
사람들의 정서를 파악할 때 그 환경에 맞게 넉넉한 정서를 갖고 살아온 것으로 보인
다. 그리고 이런 형상은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은 것을 기원하는 소박한 마음의 예술
로 생성되고 발전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사료된다.
예당저수지는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착공하였다. 식민지 치하에서 저수지를 막았으니 당시 일제가 수몰되는 땅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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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해 현대 개념의 넉넉한 보상이나 지원이 없어 많은 눈물과 한숨을 자아냈을 것이다. 저수지 축조 공사가 인력에
만 의지하여 추진하였기에 1945년 해방 때 까지도 완성하지 못했고, 이어 받은 우리 정부의 추진도 속도를 내지
못했지만 1963년에는 현재의 예당저수지로 완공하였다.
1장. 예산민요의 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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