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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2리는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수안이 남쪽으로는 저수지가 있으며 마을 왼쪽으로
는 논이 조금 분포하고 있다. 마을 안으로는 동천천이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
4)
마을변천과정
동천리는 본래 신창군 일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시곡, 점촌리, 후천
리를 병합하여 음봉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동천리로 통합된 후 두 마을로 나뉘어져 뒷내 아래 마을을 2구로 정해 주막거리 (수
안이)로 불렀다.
5)
입 향
마을에는 의령 남씨들의 집성촌으로 현재 13대째 살고 있으며, 남씨중에 처음 터를 잡은 사
람은 현조 판서를 하신 13대조가 김포에 있다가 이곳으로 낙향하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
다. 그러나 마을에 원거인은 남씨가 아닌 전주 이씨로 알려지는데 그 이유는 남씨가 이곳에
들어와 살 때 살던 기와집을 뜯다보니, 처음 전주 이씨가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
다. 지금 그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남씨가 들어오기전부터 기와집은 이미 있었으며,
그곳에 의령 남씨가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의령 남씨가 이곳에서 13대째
살고 있으니 마을의 형성은 4∼5백년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동천2리는 옛날 변씨들이 터를 잡고 처음 뿌리를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변씨가 6대째 살고 있으니 약 18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측된다.
6)
지 명
말 : 뒷내 북동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
물한산
: 동촌리와 송촌리 그리고 탕정면 명암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골 : 뒷내 뒤쪽에 있는 골짜기. 숯을 구웠음.
음봉천
: 산정리 금산에서 발원하여 삼거리에서 동천이 되고 염치읍 석두리에서 염티 저수
지를 이룬다.
소쇄당터
: 뒷내 앞 큰길가 쪽에 있는 터. 숙종때 남두추가 세우고, 남구만이 기를 지었음.
매우 화려했는데 그 자손들이 소홀히 수호해서 북더기 따위를 쌓아 두었다가 몇 해 전에 거
지들이 추위를 피하여 그 속에 들어가 놀다가 불을 내서 전소되고 이제 밭이 되었음.
관자나무
: 소쇄 당터 옆에 있는 느티나무. 네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고,
그 옆에 아름다운 소쇄당이 있어서 길 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한 번 들러 놀다 갔는데 흥선
대원군이 그 친산을 덕산에 쓰고 성묘 다닐 때 으레 이곳에서 쉬어간 관계로 그 나무에다
대부 벼슬을 봉하였는데, 대풍으로 인하여 쓰러지고 현재 그 둥치만 남아있음.
시궁골
: 주막거리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주막거리
: 뒷내 남동쪽에 있는 마을.
삼형제골
: 욧골 모퉁이에 있는 골짜기.
골 : 을시궁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윤씨의 묘가 있음.
개고개
: 점말에서 웃골로 넘어가는 고개.
꽃밭모랭이
: 주막거리 왼쪽 산 모롱이. 그 아래에 반석과 느티나무가 있음.
반석거리
: 꽃밭 모랭이에 있는 길거리. 길이 12척, 너비 7척의 큰 반석이 있고, 그 둘레에
늙은 느티나무 6주가 서 있어서 길가는 사람의 쉬는 터가 되어 있음.
충무유원지
: 야외풀장과 숙박시설이 완비된 가족단위 휴양소로 각종 조류 및 동물들이 사
육되고 있는 휴식공간.
7)
전설
이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설은 조사되지 않았음.
8)
전통놀이 및 대표적인 집단행사
마을에서는 음력 10월 열나흘날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때는 1구만이 아니라 2구와 같
이 지내고 있다. 산제사를 지내는 곳은 1구 뒷산에 모골이란 곳에 산지장골이 있어 그곳에
제사당이 만들어져 있다. 이마을도 산제사를 엄격하게 지내는 편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는 논이 조금 분포하고 있다. 마을 안으로는 동천천이 흐르는 물줄기가 있다.
4)
마을변천과정
동천리는 본래 신창군 일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시곡, 점촌리, 후천
리를 병합하여 음봉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동천리로 통합된 후 두 마을로 나뉘어져 뒷내 아래 마을을 2구로 정해 주막거리 (수
안이)로 불렀다.
5)
입 향
마을에는 의령 남씨들의 집성촌으로 현재 13대째 살고 있으며, 남씨중에 처음 터를 잡은 사
람은 현조 판서를 하신 13대조가 김포에 있다가 이곳으로 낙향하여 살기 시작하면서부터이
다. 그러나 마을에 원거인은 남씨가 아닌 전주 이씨로 알려지는데 그 이유는 남씨가 이곳에
들어와 살 때 살던 기와집을 뜯다보니, 처음 전주 이씨가 살았다는 흔적이 발견되었다고 한
다. 지금 그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남씨가 들어오기전부터 기와집은 이미 있었으며,
그곳에 의령 남씨가 들어가 살게 된 것이다. 그렇게 따지면 의령 남씨가 이곳에서 13대째
살고 있으니 마을의 형성은 4∼5백년이 된 것으로 추측된다.
동천2리는 옛날 변씨들이 터를 잡고 처음 뿌리를 내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지금까지
변씨가 6대째 살고 있으니 약 18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측된다.
6)
지 명
말 : 뒷내 북동쪽 산기슭에 있는 마을.
물한산
: 동촌리와 송촌리 그리고 탕정면 명암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
골 : 뒷내 뒤쪽에 있는 골짜기. 숯을 구웠음.
음봉천
: 산정리 금산에서 발원하여 삼거리에서 동천이 되고 염치읍 석두리에서 염티 저수
지를 이룬다.
소쇄당터
: 뒷내 앞 큰길가 쪽에 있는 터. 숙종때 남두추가 세우고, 남구만이 기를 지었음.
매우 화려했는데 그 자손들이 소홀히 수호해서 북더기 따위를 쌓아 두었다가 몇 해 전에 거
지들이 추위를 피하여 그 속에 들어가 놀다가 불을 내서 전소되고 이제 밭이 되었음.
관자나무
: 소쇄 당터 옆에 있는 느티나무. 네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고,
그 옆에 아름다운 소쇄당이 있어서 길 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한 번 들러 놀다 갔는데 흥선
대원군이 그 친산을 덕산에 쓰고 성묘 다닐 때 으레 이곳에서 쉬어간 관계로 그 나무에다
대부 벼슬을 봉하였는데, 대풍으로 인하여 쓰러지고 현재 그 둥치만 남아있음.
시궁골
: 주막거리 북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
주막거리
: 뒷내 남동쪽에 있는 마을.
삼형제골
: 욧골 모퉁이에 있는 골짜기.
골 : 을시궁골 서쪽에 있는 골짜기. 윤씨의 묘가 있음.
개고개
: 점말에서 웃골로 넘어가는 고개.
꽃밭모랭이
: 주막거리 왼쪽 산 모롱이. 그 아래에 반석과 느티나무가 있음.
반석거리
: 꽃밭 모랭이에 있는 길거리. 길이 12척, 너비 7척의 큰 반석이 있고, 그 둘레에
늙은 느티나무 6주가 서 있어서 길가는 사람의 쉬는 터가 되어 있음.
충무유원지
: 야외풀장과 숙박시설이 완비된 가족단위 휴양소로 각종 조류 및 동물들이 사
육되고 있는 휴식공간.
7)
전설
이 마을에서 전해지는 전설은 조사되지 않았음.
8)
전통놀이 및 대표적인 집단행사
마을에서는 음력 10월 열나흘날 산신제를 지내고 있는데, 이때는 1구만이 아니라 2구와 같
이 지내고 있다. 산제사를 지내는 곳은 1구 뒷산에 모골이란 곳에 산지장골이 있어 그곳에
제사당이 만들어져 있다. 이마을도 산제사를 엄격하게 지내는 편이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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