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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모루 : 배두실 북쪽에 있는 마을. 조선시대 홍인원이 있었음.
신랑봉 : 배두실 서북쪽 들가운데 있는 외단 산. 옛날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우귀하다가 도
둑을 만나 신부가 항거하다가 죽음에 신운리 통미에 장사지내고 신랑도 병들어 죽어서 이산
에 장사하였으므로 이산을 신랑봉리라 하고 신운리 통미를 각시봉이라 함.
궁 터 : 옥거리 위에 있는 터.
산 낙포대 : 배두실 남쪽에 있는 영인산 아래의 놀이터로 영인 수석원화동천이라써있음.
영인 저수지 : 상성리, 아산리를 끼고 있는 만수량 1,183톤인 저수지.
옥거리 : 불무실 옆에 있는 걸. 전엔 옥이 있었다함.
고려장터 : 성대남쪽 영인산 북쪽에 고려장터가 있었다.
백정촌 : 상성리 산 79 - 3 산 80번지 일대로 욕골에 백정의 무덤이 있는산
병 막 : 상성리 70번지 주변으로 일제 강점기에 전염병 환자를 격리 수용하던 곳으로 현재
는 민가가 있다.
영인산(
) : 영인, 염치, 인주의 3개 읍
면에
걸쳐 있는 큰산. 높이 364m의 높은산으로
험준하더라도 사람이 다치지 않으며, 정상 부근에 "용샘 이라는
"
우물이 있어 물이 마르지
않으며, 기우제를 지내면 영험이 있다고 한다. 백제때의 산성으로 석성(
)이 있어 "영인
산성 이라고
"
하며 일명 신성산성(
) 이라고 한다.
깃대봉 : 영인산 세 봉우리 중 가운데 있으며, 정상 바위에 구멍을 뚫어 깃대를 꽂았다 한
평택봉 : 고려시대에 몽골군이 쳐들어 왔을 때 평택사람들이 피난을 왔다 하여 붙여진 이름
으로 토성이 있고 평택성(
)이라 한다.
연화봉 : 옛날부터 엄봉으로 불려오다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 이 건립(1998. 8. 14) 되어
있으며, 멀리서 보면 연꽃 모양으로 보이기도 해 연화봉이라고도 한다.
안 산 : 벼두실 앞에 있는 산.
점 골 : 엄봉의북쪽 능선을 따라오다 패러글라이더 타는 곳에서 발원하여 궁아래로 흐르는
? 영인산 깃대봉과 편택봉 중간에서 발원하여 오다 샘마지골과 합류하여 낙포대
큰골(大
의 놀이터를 지나 성대(벼두실) 앞 내가 되어 영인 저수지 합류된다.
용 샘 : 영인산 엄봉 밑에 있는 샘으로 이곳에서 용이 승천하였다 함. 이 지역에 가뭄이 심
하면 기우제를 올렸다.
궁터 연못 : 상성리 142-2번지에 연못이 있는데 주인이 연못을 매워 밭으로 경작을 하는데,
하루는 주인이 못을 다시 복원하라는 꿈을 꾸고 본래의 연못 반을 복원하였더니 연꽃이 피
어났으며 현재도 피고 있다.
낙포대 : 큰골에 있는 놀이터로 약 2m의 낙수가 되는 곳이 있고, 하천 바닥 바위에
영인
수석원화동천(
洞 ) 이라
써있다. 북쪽 200m 지점에 절터가 있으며, 이곳에서
탑 밭침돌을 채취하여 가정에 지대석으로 사용하였다 한다. 또 이곳으로 전라도민들이 올려
논 3마지기를 팔아서 구경을 왔었다 한다.
공터 갱변 : 나무하는 아이들이 나무해 가지고 오다가 쉬면서 공치고 놀던 곳이다.
옥 거리 : 일설에는 벼두실(성대) 앞산(안산)에 있는 마을로 아산 옥거리에 살던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살았기 때문에 옥거리 또는 옥고리라 부른다.
엄봉골 : 영인산 동쪽에 있는 엄봉을 발원으로 불무실 마을 내가 됨. 이 골 중간 쯤에 회양
목이 자생하고 있고 영인 저수지로 합류된다.
빈자지골 : 영인산 동쪽으로 엄봉을 발원으로 북쪽으로 흐르는 내로, 옥거리 앞으로 흐르고
영인 저수지로 합류된다.
샘마지골 : 영인산 동쪽 엄봉의 북쪽에 용샘이 있는데, 이 샘에서 발원하여 흐르며 큰골 낙
포대에서 합류한다.
7)
전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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