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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익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로(白衣從軍路)
해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탄신 제463주년을 맞는 해이다.
또한 아산성웅이순신 축제가 47회를 맞았다.
오는 4월 25일~30일까지 6일간 개최하는 이순신 축제를 앞두고 이순신 장군이 두 차례에 걸쳐
백의종군을 했던 길을 걸어보고자 한다.
백의종군(白衣從軍)이란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보면‘벼슬 없이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가는 것
“을
의미한다.
요즘의 정치권에서 말하는 백의종군과는 뜻을 달리한다.
이순신 장군이 42세 때인 1586년 1월 벼슬에 나가서 1597년 7월까지 백의종군한 흔적을 찾아
장군의 애환을 되돌아보고, 오늘을 살아가는 후예(後裔)들에게 우국충정(憂國衷情)이 무엇인지를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1차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이 첫 번째로 백의종군을 했던 시기는 1586년 1월 함경도 경흥의 조산보만호(종4품)
으로 보직되고 바로 이듬해인 1587년 8월 두만강 입구에 위치한 작은 섬인 녹둔도(鹿屯島)에 둔
전관(屯田官: 농토관리)까지 겸직을 하게 된 시기였다.
장군은 적은 병사로 여진족의 침입을 막았으나 북병사 이일의 거짓장계로 인해 억울한 백의종군
을 하게 됐다. 이순신 장군은 그 이듬해 여진족과의 전투에 참전하여 시전부락(두만강 건너편에
있던 오랑캐 마을)을 점령하는 공을 세워 다시 복권되었다.
2차 백의종군
이순신 장군이 두 번째 백의종군을 하게 된 것은 왜군(소서행장)의 첩자였던 요시라의 간계에 빠
진 선조와 조정에서 장군에게 수군을 이끌고 나가 가등청정의 함대를 요격하라는 명령을 내렸으
나 기습공격을 경계해 신중한 군사작전을 펼쳤다. 조정은 이순신이 명령을 어기고 왜군 함대를
요격(邀擊)할 기회를 놓쳤다고 판단하는 한편 원균의 모함이 가세해 1597년 2월 조정은 이순신
장군의 삼도수군통제사 직책을 박탈하고 의금부에 구속시켰다.
장군은 여러 차례 모진 고문을 당했으나 판중추부사 정탁이 올린 신구차(伸救箚:일종의 救命 진
정서)를 읽고 감동한 선조가 장군에게 특사령을 내려 투옥한지 28일만인 4월 1일 석방되면서 도
원수 권율의 지휘아래에서 종군하여 다시 공로를 세우라는 명령을 받고 쓰라린 백의종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2차 백의종군은 옥에서 석방되어 서울에서 순천까지 357km와 순천에서 도원수 권율의 지휘소
까지 이동하는 초계까지 168.7km의 두 과정으로 나뉜다.
백의종군 이후 이순신은 삼도수군을 재건하기 위해 연안으로 답사를 가던 중 삼도수군통제사의
재임명 교지를 받게 되어 백의종군을 마치게 되었다.
17
아산타이딩
A-san of Ti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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