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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만의간척과개척 ?167
이후에 권리 이양을 받은 이들에게는 1,600만원을 내고 있다. 쌀값이 헐값인 상
황에서 3,000평의 소득은 400여 만원으로, 쌀로는 60가마니 정도가 생산된다.
이것을 팔아 토지상환을 하고 나면 주민들은 오히려 빚만이 남겨진다. 이에 땅
을버릴수도유지할수도없는상황이라한다.
지금은 고인이 된 장기욱 변호사가 주축이 되어 초기에 개척단에게 분배해준
권리를 유지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개척단에게는 무상분배하기로 했으니
43)
그들에게만이라도권리를인정해줄것을기대하고있다.
4.천수만갯벌과철새그리고개발
1)갯벌과철새:버드랜드
담수호수와 농경지가 어우러진 곳에는 오리·기러기류가 농경지에서 먹이활
44)
동을 위해 많이 모인다.
AB 방조제 건립 이후 이곳에 간월호와 부남호 등의
담수호수가 만들어졌고, 간척지가 조성됨에 따라 낙곡(落穀)을 먹기 위해 철새의
43) 양대동 이외에 각 마을별로 개간이 이루어졌다. 한전이 들어와 전기공급이 가능해 진후로는 지하수 이
용이 가능하므로 논농사가 쉬어졌기 때문에 농지확보를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다. 시전리에서는 야산을
깎아 밭으로 만드는 개답(開畓)을 1970년대에 시작했다. 월남한 피난민이나 서울 판자촌에서 생활하던
주민들이 노동자들로 참여했으며, 지역민 중 품을 파는 사람들도 개간 후 땅을 소유할 수 있었으므로 함
께 참여했다. 외지인들은 가족 단위로 내려와 야산에 방 1칸, 부엌 1칸으로 된 집을 짓고 살면서 개간에
참여했다. 개간 후 일인당 3,000~4,000평을 주기로 했으며, 개간하는 동안에는 면사무소에서 밀가루를
공급해 주었기에 수제비를 쑤어 먹으면서 노동을 했다. 약 야산의 나무를 벌목한 후 2~3년여 동안 개간
해야 비로소 밭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개간에 참여한 노동자의 80%는 개간 후 받은 농지를 팔고 이곳을
떠났다.
44) 이하의 내용은 버드랜드 한성우 주무관의 대담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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