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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자의 방법은 몇 가지가 있다. 주로 하는 각자는 통각이라고 불리는 바닥이 둥그스름



하게들어가는각자이다.대부분의비석은이방식으로하는데꼭대나무를쪼갠면과같


이한다.이상환님도대부분통각을하였고,일부각자에서바닥이평평한각자를하였다.

각자공의품삯은비쌌다.
각자공의임금은아주비쌌다.임금은글자수에따라받았는데,대자는소자의10배값
을 받았고, 아주 큰 글씨는 따로 계약하였다. 농사일하고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은 돈을 받
았으나 일감이 늘 있는 것이 아니어서 놀 때가 많았다. 오랫동안 한 작업장은 국립묘지를
창설할때였다.국립묘지전쟁기념관의‘념’자를새겼다.서산에서는이용구씨집안바위에
글을새겼다.일감은한식때가가장많았고,다음이9월9일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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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80년대 들어 기계화가 이루어져 품삯이 내려갔고, 각자 일을 하는 사람도 많
아그만두었다.
아버지는 1952년도에 대섬을 사서 이사 왔고, 자신은 1997년에 대섬을 떠나 용머리로 다
시이사갔다.
이상환 님이 17세 되던 1952년, 이상환 님의 아버지 이윤우(李潤雨, 1904)님은 가산을
정리하여대섬을사서이사하였다.당시용머리에집,밭800평,약간의산이있었는데모
두 팔아 대섬 전체 2.7정보를 산 것이다. 당시 이상환 님의 아버지는 각자를 했는데, 6.25
전쟁중이라생활이어려워미래를내다보고대섬으로이주한것이다.당시대섬에는9가
구가살았다.대섬을샀기때문에주민들한테약간의토지세를받았고,이상환님은남의
배를타는선원이되었다.남의배를3년탄후,품삯으로배를넘겨받아선주가되었으나,
1톤미만의작은배였다.
이상환님의아버지는1973년대섬을홍승만씨에게팔았고,아들인이상환님은그대로
살다가남포방조제가완공된후,1997년에고향인용머리마을로이사갔다.이때홍승만
씨측으로부터보상받아땅을사고집을지어이사하였다.
대섬주민들은작은배를가지고어업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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