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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선생사당과묘(사진곽상규)
출한 학파들 속에서 인간적 성숙성을 배움으로써 자라났을 것으로 추정된
다. 화서 이항로李恒老는 면암에게 낙경민직 교훈을 하사했다. 경敬과 직直,
이를인간이가장소중한가치로여겨야할것이라배운그였기에대쪽같은
삶을살다가생을마감했다.
면암묘소는지금광시면에자리잡은유택을포함하여일컫는다.이곳주
변은관음리라고한다.관음리,이는 수려하고시적이고은유적인표현이다.
관음리와 신대는지역경계를 하고있다.이곳에서외세에의해국권이침탈
당하는 마당에면암은 죽기를 각오하고반외세선봉장에섰다.선생은 우리
나라 유림의 대표적인 선봉장이었다. 선생은 고종 10년(1873년)에 철폐시킨
만동묘를 복원하고,서원철폐書院撤廢하려는대원군의정책에반대하는 상소
를올려제주도로유배당했다.
제주에서 특사로 풀려났지만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 또한 강력
히 반대하였다. 이어 1906년 6월 그의 제자 임병찬과 전라도 순창에서 의
병을 일으켜 항일투쟁 중에 체포, 대마도에 유배되었던 불운의 애국지사였
다. 면암 선생은 “왜놈이 주는 밥알은 하나도 먹지 않는다”고 단식 끝에 끝
166 근대예산풍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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