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禮山의
윤희두(尹熙斗)(1896~1969)
윤희두
윤두희가 1928년 최초로 설립한 양막교회
오가출신으로본은파평(坡平).부친윤종렬(尹鍾烈)과박씨사이에서장남으로1896년3
월22일태어났다.
그의본적은오가면양막리199-2번지이며,당진송악에서태어나어려서양막리로이사온
것으로전해진다.1946년경주인이춘심의녀이장화(李長華)와결혼했다.
3.1운동당시마을이장을보며도랑뎅이산에서4월초에마을주민전체와인근지역민이참
여한독립만세운동을주도하여모든책임을자신이주도한것으로일경에체포되어모진고
문과태형을받고나왔다.일제강점기국권을상실해강압과착취는심하고농민들은가난과
굶주림으로고통받고있을때좌방리임명호선생이설립한‘등대교회’에서민족의구원과
피압박에서벗어날새로운희망과역할을터득하고동리사람심태섭?오간선씨와협의하여
1928년3월28일양막리산59번지에양막교회를설립하였다.
민족독립을위해선교육이필요함을역설했던선생은우선지역에학교나교육시설이없어
안타깝게여겨1930년예배당에강습소를설치하여본격적인교육사업을펼쳤다.
1947년 예산읍 외 지역 최초로 ‘양막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해 중등교육기관으로 교육의 문
호를확대개방하였다.배움의기회와열기가고조되면서몰려드는학생을수용하기힘들게
되자 1949년에 일본인 적산토지였던 분천리56번지 일대를 매입하여 마을 내 빈 창고를 뜯
어다가 짓는 등 온갖 노력을 다해 교실5칸을 지어 배움의 터전을 마련했다. 이는 현재 임성
중학교의모태가되었다.
‘인재를 발굴해야한다’며 발품을 팔아 훌륭한 선생을 찾아 다녔다는 선생은 민족교육의 산
파역할뿐만아니라몸소실천한위대한교육의선구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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